나와 직장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다시 한번 더 돌아볼 때다.
직장생활은 사뭇 허탈한 구석이 있다.
열정을 다해 역량을 펼칠 무대를 얻었다는 데에는 감사한 일이나, 그 열정을 활활 타오르게 하여 자신을 소진하고 나면 바람 빠진 풍선이 된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히 열심히는 했고 성과도 났는데, 나에게는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나마 한 달에 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그래도 내가 허투루 하루하루를 보낸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준다.
그럼에도 그 허탈함은 매일이 반복되며 직장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내가 꼬박꼬박 해서 월급이 나오는 것인데, 마치 부속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월급만큼의 인생은 아닐까 회의도 많이 하게 된다.
나 또한 스스로를 돌아볼 때, 내 하루가 가장 허탈하다고 느꼈을 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을 때다.
'출근한 것도 아니고, 퇴근한 것도 아닌 하루.'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난 진심으로 울컥했다.
출근은 했는데 일이 도통 손에 안 잡히고, 인정은 제대로 못 받고, 하는 일마다 족족 지적을 받을 때. 시간이 흘러 몸은 퇴근 하지만 무거운 마음은 사무실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때 말이다. 출근한 것도 아니고, 퇴근한 것도 아닌 하루는 그렇게 최악이다.
나는 <직장 내공>에서 '회사를 악용할 것이냐, 이용할 것이냐, 활용할 것이냐'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사'와 '나'의 성장 관점으로 풀이한 글인데 둘 다 성장하면 '활용', 둘 중 하나만 성장하면 '이용', 둘 다 도움이 되지 못하면 '악용'이라 말한 것이다. 위와 같은 허탈함을 느낄 땐 분명코, 나는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용'이나 '악용'의 선상에 있지 않았을까를 돌아본다.
'이용'은 말 그대로 '이용당하거나',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만 쪽쪽 빨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 또한 허탈함이다. 회사의 성장은 모르겠고 나 하나만 살고 보자는 지향점도 단기적이기 때문에 그리 충만한 삶이라고 볼 순 없다. 서로를 '악용'하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 비일비재하므로 그러한 일은 아예 없는 것이 좋다.
결국, '출근한 것도 아니고, 퇴근한 것도 아닌 하루'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직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분명 '활용'할 구석이 어딘가엔 있다. 회사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선 내가 성과를 내야 한다. 내가 성과를 내기 위해선 내 역량을 키워야 한다. 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성과'는 곧 '나'와 연결된다.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우리는 우선 나와 직장의 성과를 동일시해야 한다.
월급을 받고 있다면, 회사의 목표와 성장에 최대한 나를 맞추되 그 과정에서 내가 얻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어려운 목표의 프로젝트를 맡았다면 그 과정은 고될 것이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얻은 역량은 분명코 삶의 어느 순간에 활용할 순간이 온다. 그러나, 그저 힘들다고만 생각하며 출근한 것도 아니고, 퇴근한 것도 아닌 상태로 그 프로젝트를 임한다면 나에겐 결국 남는 게 없다.
'직업'안에는 '업'이란 말이 있다.
월급이 나올 때 그것은 '직업'이지만, 평생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은 '업'이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 그때. 결국 우리는 '직업'에서 배운 '업'으로 먹고살 것이란 걸 깨달아야 한다. 출근할 때 출근하고, 퇴근할 때 퇴근하는 몰입의 자세로 임해야 '직업'은 비로소 '업'이 될 수 있다.
다시, 출근할 때 출근해야 한다.
더불어, 퇴근할 때 퇴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와 직장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다시 한번 더 돌아볼 때다.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소통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