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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2. 2019

나 다움이란 건 뭘까?

그러니 우리 때론, 우리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자.

내가 내가 아니게 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길을 걷다 아빠는 귀를 의심했단다.

첫째 너의 질문에 아빠는 가던 길을 멈췄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똘망똘망한 너의 눈빛이 잊히질 않아.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고민하며 당황했던 아빠의 엉거주춤했던 모습도 함께. 내가 들은 이 질문, 실화인 건가? 어른이 되어서, 그것도 나이를 한참 먹은 후에야 했던 고민이었는데... 너는 벌써부터 인생에 대한 계획이 다 있는가 보구나!


자아(自我)의 개념


아빠는 무엇보다 네가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기뻤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도 돈도 아닌 바로 '너 자신'이라고 한 아빠의 말이 효과가 있던 걸까. 내가 내가 아니면 어떻게 될까란 질문은, '나'를 의식할 때 나올 수 있는 말이겠지.


사실, '나'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아.

'나'는 한 마디로 정의될 수도 없을뿐더러, 기껏 정의를 했는데 누군가 "그건 네가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혼돈이 올 수도 있거든.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정신적인 나'와 '외형적인 나'를 나타내는 상징이야. 나는 여전히 나지만, 사람들은 나를 벌레로 보는 그 상황을 통해 우리에겐 두 가지 자아가 있다는 걸 카프카는 말하고 있거든.


철학에서는 '자아'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정의했어. 그는 자신이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혹시 왜곡된 무언가가 아닐까 의심을 했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 모든 것이 허상이라도 그것을 의심하는 나 자신, 즉 '생각'하는 그 자체가 내 '존재'를 증명한다고 봤어.


그렇다면 심리학은?

가장 잘 알려진 개념은 바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나오는 자아의 개념이란다. 그는 1923년 이후 '심리적 구조론'을 정립했고 자아는 '이드', '에고', '슈퍼 에고'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어. '이드'는 원초적 자아로 쾌락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슈퍼 에고'는 이상주의를 지향하며 도덕, 윤리, 양심 등을 기반으로 하는 마음속 사법부 같은 존재야. 문제는 '에고'인데, 에고는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해.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거든. 그래서 항상 갈등 상황에 놓이게 돼. 

예를 들어, 아빠가 다이어트를 해야 해서 밤늦게 라면을 끓여 먹고 싶을 때. '이드'는 식욕에 기반해서 어서 먹으라고 나를 부추기고, '슈퍼 에고'는 밤늦게 라면을 먹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다이어트에 실패하게 되면 자괴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먹더라도 내일 먹으라고 안내하지. 자, 이제 선택의 몫은 '에고'에게 있어. 쉽지 않은... 일이겠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그렇다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참 쉬운 질문일 것 같지만 육체적으로 보면 좀 다를 수 있어. 우리는 1년에 3.6kg의 피부 세포를 떨어뜨리고, 창자, 허파, 간세포, 적혈구 등은 짧게는 2~3일 길게는 5개월마다 새롭게 바뀌어. 그러니,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육체적으론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왜 우리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하게 간주할까? 그건 바로 신경세포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신경세포로 우리는 '생각'이란 걸 하게 돼. 즉,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처럼 생각함으로써 존재하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동일시할 수 있다는 거지.




내가 나임을 인지하는 그 상태.

그것을 우리는 결국 '나 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는 '나'를 완벽히 알 수 없어. 나도 모르는 내가 내 속엔 너무 많이 있거든. 그런 차원에서 아빠는 '자아는 여행'이라 생각해. 매일을 나를 알아가는 과정. 가장 가깝지만 동시에 가장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 여행.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와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뜻깊은 여행.


내가, 내가 아닌 그 순간은 아마도 우리의 '정신'이 중단되었을 때를 의미할 거야.

즉, 자아라는 여행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이 중단될 때.


'나 다움'이란 건 결국, 매일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또 다른 나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이 아닐까 싶어. 그러니 우리 때론, 우리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나자. 또 다른 나를 만나고 받아들이는 진중하고도 흥미로운 여정을 기대하며!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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