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용기
누가 그랬던가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우리는 정서적으로 포기를 쉽게 하지 못한다. 포기하는 즉시,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는 경향이 있으니. 재밌는 건,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 낙인을 찍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포기하지 못할까. 포기하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는 두려움과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발적으로, 도전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포기하면 그 낙인이 찍힐까 봐 주저주저 포기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포기가 무조건 나쁜 뜻만은 아니다.
그 뜻을 좀 더 헤아려 보면 더 그렇다.
포기(抛棄)
1. 하던 일이나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2. 자기의 권리나 자격, 물건 따위를 쓰지 않거나 버림
- 어학사전 -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첫 번째의 의미다.
도중에 그만둔다는 것은 자괴감이 드는 일이며, 끈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유쾌한 일이 아니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두 번째 뜻을 보면 그러한 생각에 여지가 생긴다.
우리네 인생은 모든 것을 다 가져갈 수 없다. 다 지닐 수도 없으며, 오히려 욕심을 부리다간 이도 저도 못 가지게 된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보단, 얼마나 중요한 걸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많은 것을 가지려 하다가, 정작 중요한 걸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던질 포'와 '버릴 기'는 살아가는데 필수인 덕목이지 않을까.
포기와 비슷한 말로는 '체념'이 있다.
'체념'은 '품었던 생각이나 기대, 희망 등을 아주 버리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음'이란 뜻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하고 곧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괜한 희망이나 기대에 휘둘리지 않는, 심지 곧은 대나무나 선비와 같은 느낌.
다만, 좋은 뜻으로의 '포기'와 '체념'은 자신의 한계에 다다르는 노력과 최선을 다 한 뒤의 것이다.
그러고 나면, 후회가 덜하다. 대충대충 포기하고 체념해서, 어떻게든 되겠지... 기다리자는 게 아니다. 해서, 때론 내가 던져 버려야 할 것들, 기대와 희망은 접고 의연하게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을 잘 판단해야 한다. 최선을 다할 땐 다 하고, 버릴 땐 버리고 기다리는 자세.
어쩌면 그것은 용기가 아닐까.
포기할 줄 아는 용기. 체념할 줄 아는 용기. 암흑 속에서라도 기다릴 줄 아는 용기.
용기는 항상 크게 울부짖는 게 아니라, 하루의 마지막에 "까짓 거 내일 다시 해보자"라고 읊조리는 것일 수 있다. 최선을 다한 후 용기를 내어 오늘 포기하고, 용기를 내어 다시 도전해보는 것.
때론 그저 다 포기하고 싶다고 속시원히 말해야겠다.
용기 내어 포기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