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손해 보지 않으려, 더 큰 손해를 감내하는 헛똑똑이들.

by 스테르담

[Episode 22]


- 손해 -


시대가 너무 각박하다.

왜일까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것이 '손해'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나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남에게 손해를 입히기 위해,

남의 손해를 최대화하기 위해.


우리가 오늘을 사는 모든 모습이 손해와 얽혀 있다.

'손해'는 다른 말로 '이익'과 치환된다.

상반적인 개념이지만, 나는 이것들이 치환되는 관계라고 보는데,

과연 그것들은 공존할 수가 없고 그저 이것 아니면 저것이 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1조 원의 다단계 사기는

외환 거래를 통한 고수익 보장의 마수에 걸려든

사람들의 통곡이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만, 내가 이익을 보는 구조로 세상이 바뀌어간다.


너와 내가 함께 이익을 보거나,

너와 내가 함께 손해를 보는 일들을 사람들은 바라지 않는다.


'손해'와 '이익'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물질적', '정신적'이란 단어다.

무언가를 얻고 잃는 것은 비단, 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함께란 말이다.


그런 깊은 뜻을 알리 없는 사람들은

'정신'은 뒤로 하고 '물질'에 온 집중을 한다.

그러니, 물질과 함께 정신을 잃어 나자빠지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고수익이라는 마수에 빠져든 사람들 또한,

정신보다는 물질에 집중한 결과다.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복잡한 셈법이

비경제적인, 비효율적인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해내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쩌면,

다들 헛똑똑이들 일지 모른다.


손해 보지 않으려, 더 큰 손해를 감내하는 헛똑똑이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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