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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09. 2020

나를 관통하는 글

생각하고, 마음으로 쓰고, 많이 써야 한다.

나는 나의 첫 독자다!


글쓰기가 영 마뜩잖을 때가 있다.

써 놓은 글이 못마땅하거나, 첫 문장부터 손이 가지 않는 경우다. 또는 한두 줄 쓰다가 위축이 되고, 다 썼다고 한들 휑휑한 마음에 선뜻 어디 내보이질 못한다. 심지어는 아주 좋은 소재나 제목,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데도 그러하다. 좋은 영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상념은 생각보다 쓰라린다. 그 느낌은 마음으로까지 이어져 무언가 불편하고 오랜 시간 개운치가 않다.


왜일까.

그것은 나를 관통하지 못한 글이기 때문이다.


글은 나를 관통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성을 득한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온전히 그것을 내어주지 못하면 분명 어딘가에서 그 글은 막히거나 방황을 하게 된다. 나는 나의 첫 독자이기 때문이다. 

생각함과 동시에 쓰고, 씀과 동시에 생각하는 글은 마음을 관통하여 비로소 손가락으로 전해져 자판을 두드린다. 글의 진정성과 무게는 생각과 사색의 'n제곱'에서 우러난다. 허공에 둥둥 날아다니는 의미와 깨달음들에 생각의 무게추를 달아 머리로 끌어내리고, 마음의 그릇에 소담하게 담아 내보내야 하는 그 과정이 과연 익숙지 않은데 나는 그 과정을 끝끝내 거쳐야 비로소 첫 독자인 나를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이 나를 관통하진 않는다.

그럴 깜냥도 되지 않고, 그래서 때론 적절한 타협을 통해 덜 정제된 글들도 한 움큼 밖으로 내보낸다. 다만, 나는 언제나 내 글이 첫 독자인 나를 관통하기를 바라고 지향한다. 그러면서 묻어나는 진정성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스스로 동한 글에는 위력이 있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오는 피드백들에게서 나는 감사함과 희열을 느낀다. 글을 쓰는 목적을 생생하게, 오롯이 느끼는 그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나를 관통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항상 다음을 유념한다.


첫째, 많은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글을 쓸 때 사람들은 지식이 많거나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단계를 빼먹고 이야기를 한다. 알고 있는 게 많고 독서를 많이 한 사람 모두가 글을 쓰진 않는다. 즉, 지식이 많거나 독서를 한다는 건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전제를 두는 말이다. 그저 달달 외운 것들은 지식이라고 보기 힘들며, 책을 읽고 돌아서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을 두고 우리는 독서라 정의 내리기 어렵다. (독서라기 보단 그저 활자를 읽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생각'은 개념이기에 물리적 실체가 없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 그것에는 물리적인 것을 넘어선 무게와 깊이가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빈도와 시간,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며 생겨나는 스노볼 이펙트는 가히 대단하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그것들은 서로 연결되며 시너지를 낸다. 넓게, 깊게, 자주 생각하는 과정은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고, 그 근력은 마침내 누군가를 관통하는 글의 힘이 된다.


둘째, 마음으로 써야 한다.


떠다니는 영감을 생각의 추로 끌어내렸다면, 이제 그것은 마음을 거쳐야 한다.

겹겹이 쌓인 생각이 승화되는 과정이다. 자칫 차가울 수 있는 이성을 감성으로 보완하고, 메마른 지식에 촉촉함을 선사하여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낸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감'과 '위로'는 그 온기에서 나온다. 논리적이고 팩트에 근거한 말을 하더라도, 그 기반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온기를 부여하면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어루만지는 훌륭한 글이 된다.


머리로 생각해서 머리로 쓰는 글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 아니고, 증명된 것들에 근거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제한된 상황에 있는 것도 아니니 나의 글쓰기는 머리를 통해 마음을 꼭 지나쳐야 된다고 믿는다. 온기를 담은 선한 영향력. 그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다. 진심은 온기를 가지고 있으며, 온기는 진심을 제대로 전한다는 사실을 나는 글을 쓰면서 자주 깨닫는다.


셋째, 많이 써야 한다.



'수적천석[水適穿石]'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관통'은 뚫는 것이다.

세상엔 한 번에 뚫리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그래서 생겨난 말들은 '노력', '꾸준함', '끈기', '버티기' 등이다. 바위를 뚫는 물방울을 두고 우리는 '물방울의 꾸준함'이라 말한다. 그 꾸준함은 인고의 시간과 집요함을 일컫는다. 더불어, 바위를 뚫을 정도의 물이 있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나를 관통하는 글을 만난다는 것은 일 년에 몇 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정서적 개념이기에 뚫리는 그때가 언제인지 기약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는 계속 물방울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 언젠간 뚫린다. 무수한 물방울은 내가 쓰는 글이다. 내 마음의 바위를 관통하기 위해서 나는, 꾸준하게 집요하게 끝까지 버티며 써 나가야 한다. 그리고 돌아보면, 수많은 글들은 어느샌가 켜켜이 모여 호수나 바다 같은 규모의 자산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글쓰기는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자 쓰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생각하는 과정과 마음을 거쳐 써 내려가는 그것에 희열이 있고, 그 희열은 글을 쓰는 자의 것이다. 내가 글을 쓰면 그 희열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물론,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나를 관통하지 못해서 오는 답답함도 있다. 그러나 글 쓰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 살아 숨 쉼을 느끼며, 나의 글이 누군가에 도움이 되었을 때 느끼는 그 온기를 글 쓰는 사람들은 앙망한다. 그래서 나를 관통한 글들은 고통의 무엇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가진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관통하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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