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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22. 2020

'감정'은 글쓰기의 시작점이다.

써 내려가는 나의 감정과 생각은 기대 이상의 글로 마무리될 것이다.

뭘 써야 할까요?


정말 공감되는 질문이다.

나는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면 '왜 써야 하는가'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쓰는 이유를 알아내야 더 오래 쓸 수 있다. 책 한 권 냈다고 글쓰기를 멈출 순 없으니까. 진정한 글쓰기는 계속해서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계속 써야 나를 만날 수 있고, 삶의 통찰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왜'에 대해 전달을 하고 나면, '어떻게'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중, '무엇'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주제가 시작되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사뭇 진지해진다.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표정들이다.

글쓰기의 마음이 하늘 같아도, 뭘 써야 할지 모른다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랬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가장 어렵고, 시작을 더디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무엇을 쓸까'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민을 넘어 두려움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만 쓰면 일기와 다를 것이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걸 쓰자니 당장 그럴 지식이 없고. 그저 그런 내 글을 누군가 거들떠볼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 


그 고민 사이, 다시금 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잊고 만다.


감정을 본 적이 있는가?


하나 묻고 싶다.

'감정'을 본 적이 있느냐고.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나는 수많은 감정을 보고 만지고, 심지어는 그것을 같이 느낀다. 바로 '책'으로부터다. '책'에는 글쓴이의 '감정'과 '생각'이 있다. 그 둘은 항상 공존한다. '감정'만 써 놓은 책은 없으며, 더불어 '생각'만 써 놓은 책도 없다. 책 안에 있는 그 글에는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하다.


바꿔 말하면, 글쓰기는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진지한 작업이다.

흔히들 '감정'과 '생각'은 별개의 것, 심지어는 상반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나는 아니다. 그러한 생각에 대해서는 강렬하게 반대한다. '감성'과 '이성'은 유기적인 것이지 반대의 것이 아니다. 감정은 생각을 불러오고, 생각은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심리학에는 지각 심리와 인지 심리가 있다. 외부적인 정보를 무엇을 통해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정보처리화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종내에는 그것이 마음에 일으키는 영향과 행동 간의 관계를 연구한다. 그러니, 감성과 이성 즉, '감정'과 '생각'은 연결된 것이고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한 번 돌이켜보자.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감정'과 '생각'이 있다. 나 또한 지금 단순히 타이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이 글을 통해 도움받을 분들을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이 담겨 있다. 글을 쓰는 건 행위와 마음의 조합이다. 내 생각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더 나아가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역시, 지금 여기엔 내 '생각'과 '마음'이 흥건하다.


'감정'은 글쓰기의 시작점이다!


글쓰기는 지식만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과감하게 시작하면 된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된다면 지금 바로 자신의 감정을 봤으면 한다. 거기에 답이 있다. 감정은 팔딱팔딱 뛰는 재료다. 그 재료를 다듬을 때, 우리에겐 무수한 생각이 생겨나고 스스로 확장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어딘가에 쓰면 그것은 '인지화'가 된다. 인지화된 감정을 우리는 달리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기분 좋음을 표현할 때 우리는 하늘을 나는듯한 느낌이라 표현하지 않는가. 한 번 써보면, 생각보다 우리 감정은 풍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감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거나 반대로 나빴을 때를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거나, 상사로부터 욕을 먹었거나. 생각이 많아진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일상생활을 잘하지 못할 정도로. 실수가 많아질 수도 있고, 무언가에 홀려 아주 좋은 생각이나 아주 나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할 때 글을 쓰면 우리는 그 무수한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정리하면, '감정'을 볼 수 있고 마냥 그것에 휘둘리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감정을 생각하며 적어 놓은 글은 그 사랑을 더 아름답게 하고, 나쁜 감정을 생각하며 써 내려간 글에서 우리는 욱하는 마음을 다잡고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지금의 감정이 아니라면, 예전의 감정을 불러와도 좋다.

아니면 어떠한 기억을 불러와도 좋다. 기억을 관장하는 우리 뇌의 해마엔,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바로 붙어 있다. 기억을 떠올릴 때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다. 


어찌 되었건 일단 써 내려가는 나의 감정과 생각은 기대 이상의 글로 마무리될 것이라 자부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

감정으로부터다. 감정은 생각을 확장한다. 글은 더 풍부해지고, 영역은 더 넓어지는 걸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무색의 글에 나만의 색깔이 칠해지고, 무취의 글에 나만의 향기가 덧입혀질 것이다. 내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 따라, 또 그 감정으로부터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얼마만큼 끄집어내느냐에 따라 글쓰기의 흥미진진함은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이것을 '왜 쓰느냐'로 다시 수렴하면, 결국 '무엇을 쓰는가'도 해결될 일이다.

길게 늘어놓았지만, 결국 글쓰기는 나를 만나고, 나를 표현하는 작업이기에 그렇다.


나에겐 '감정'이란 게 있어 참 다행이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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