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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01. 2020

글쓰기라는 용기

글쓰기는 내 안의 용기를 발견하게 해 준다.

"굳세고 씩씩한 기운"


바야흐로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모든 게 불확실한 시대기 때문이다. 확실하지 않은 정서는 불안을 야기한다. 불안의 상황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냉혹해서 보통의 기운으로는 헤쳐나가기 힘들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굳세고 씩씩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이란 거센 바람에 덜 흔들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거나 이뤄내고 싶은 목적은 대차게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더불어, '용기'란 어쩌면 선택 앞에서의 과감함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없으니, 무언가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결단의 에너지가 곧 용기다.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을 용기.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게 중요하다는 굳세고 씩씩한 기운이 바로 용기인 것이다.


나의 용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나의 용기는 무엇인가. 용기가 넘쳐난다면 나는 스스로를 용감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스스로를 용감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용감한 사람은 앞뒤 재지 않고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나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상상 속 용감한 사람만큼 과감했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겁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조금은 어정쩡하게 용감함과 비겁함 사이에서 살아왔다고 표현하는 게 맞아 보인다.


그럼에도 나에겐 그 어떤 용기가 있긴 있었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마주한 수많은 절망 속에서 나는 힘을 내었을 테고, 그러니 나는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까. 내가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 용기란 내가 만들어 낸 것일 수도, 또는 외부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안으로부터의 용기는 나의 다짐, 열정일 것이고 밖으로부터 온 용기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나 그 어떤 깨달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분명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단지, 그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용기가 없었는 지도.


글쓰기라는 용기


그래서일까.

인생의 어느 순간 갑자기. 글쓰기는 나의 용기로 다가왔다. 그것은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고, 안으로부터 나오는 바람과 밖으로부터 오는 자극의 충돌이었다. 어쩌면,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용기가 필요했던 것일 수 있다. 더 커진 불확실성과 무언가 꾸준함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은 두려움을 미리 감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글쓰기'는 나에게 훌륭한 용기다.


첫째, 글쓰기는 내 안의 용기를 발견하게 해 준다.


때로, 용기는 힘주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일 수 있다.

'나'를 마주하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금의 세상은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볼 것도 많고, 놀 것도 많고 또 먹고 사느라 바쁘다. 결국 나 자신을 건사하기 위해 그토록 정신없이 사는 건데, 정작 그 가운에 '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나'를 만나는 그 자체다.

내가 쓰는 글이란 결국, 내가 받아들인 세상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해석하여 내어 놓는 결과물이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나와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그러니까 글은 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에는 내가 흥건하게 배어있다. 그리고,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장점과 고민 그리고 스스로 잘 해내려는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나도 모르고 있던 '용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글쓰기는 나를 굳세게 해 준다.


적는 것의 힘은 대단하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을 머리로 생각할 때와, 그것을 적어 놓는 건 매우 큰 차이다. 하버드에서 삶의 가치를 적어 놓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향후 추적 조사했을 때, 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이루고 행복지수도 높았다는 결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굳이 그것을 실험하지 않아도, 글쓰기가 나를 굳세게 해 줄 거라는 걸 믿는다.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글'은 '기록'이자 '표현'이다. 기록되고 표현된 나의 생각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진화하고, 그것은 실재가 된다. '실재'해야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 


즉, 막연한 상상에서 허덕이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기록하여 깨닫고 '굳세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셋째, 글쓰기는 내가 주체가 되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게 해 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람이 흔들리는 건 불확실성 때문이다.

불확실성이란 규모와 복잡한 법칙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규명해보고자 확률이나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러니,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를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불확실한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지금 당장의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글쓰기는 내 안의 용기를 발견하게 해 주고 또 굳세게 해 준다. 불확실성에 휘둘리기보단 '주체적'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적어온 나의 글은 역사고, 방금 쓴 글은 나의 생각이며 다짐이다. 어차피 불확실한 세상이란 걸 받아들이면, 불확실성이란 파도를 타고 즐기는 순간을 만들 수도 있다.


빨강머리 앤이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오히려 더 설렌다고 말한 것처럼.


그 설렘을 받아들이려면, 내가 주체가 되어 불확실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주체가 되려면, 나는 '나'와 '세상'을 쉬지 않고 써 내려가야 한다.




글쓰기는 비교적 힘들지 않다.

당장 큰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여 얻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쓰면 된다.


다만, 어느 정도의 용기는 필요하다.

그리 특별하게 써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 완벽한 문장이나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짐. 그리고 내 이야기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창의적이라는 씩씩한 생각.


아주 조금의 용기를 들여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글쓰기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마어마한 용기를 되돌려준다는 걸 나는 이미 절실히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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