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r 03. 2020

글은 OOO(으)로 쓰는 것이다.

글은 '숨'으로 써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은 뭘로 쓴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을 들었다.

과연 맞는 말이다. 만약, 내 엉덩이를 의자에 꽁꽁 싸매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보다 약 50% 이상의 글은 더 썼을 것이다. 더불어, 지금 병행하는 다른 글이나 장르도 지금보다 좀 더 많이 진척이 되었을 것이고.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생각해낸 제목의 글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할 때 나는 의자에서 여지없이 엉덩이를 뗀다. 그렇다고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릴없이 이 방 저 방을 오락가락하는 게 다다. 또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 아예 책상에 앉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많다. 온라인 쇼핑몰에 혹시 작가를 위해 의자에 엉덩이를 꽁꽁 싸매는 물건이 있는지 검색해봐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어느새 나는 내 글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지 못하다고 평생을 구박한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어쩌면 이것은 기적이다. 책도 여러 권 출판되었다. 덕분에, '평생을 구박하던 나'와 '구박하는 나의 기대치를 밑돌았던 나'는 요즘 휴전 중이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글을 쓰고 또 썼는지를 돌아봤다.


글은 OOO(으)로 쓰는 것이다.


첫째, 글은 머리(생각)로 쓰는 것이다.

: '머리'는 '지식'을 뜻하는 게 아님!


책을 내고 강연을 하니 사람들이 사람들은 내가 '다독가'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얼마나 많이, 자주 읽느냐는 질문에 나는 한 없이 쪼그라든다. 질문하시는 분들의 기대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쓰고 나서는 예전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다. 더불어,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중요한 부분은 밑줄을 쳐가며 그것을 나중에 복기하는 반필사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질문의 기대치를 알기에 그 정도로는 독서를 하고 있지 못한다고 내뱉는다.


다만, 계속해서 쓸 수 있는 건 '생각' 때문이다.

나도 그걸 알지 못했는데,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데 왜 글은 계속해서 나올까를 돌아보니 과연 그것의 결론 중 하나는 '생각'이었다. 즉, 어디선가 단 한 줄의 글을 보더라도 나는 그것을 곱씹고 되새긴다. 내 삶에서 그 한 문장이 의미하는 것, 나에게 와 닿는 그것들을 조각내어 흡수한다. 흡수된 의미는 영감이 된다. 어느 글의 제목이 되며, 또 다른 글의 첫 문장이 된다.


심리학을 전공해서일까.

아니, 사람과 사물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서 심리학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맞다. 나에게 일어난 어느 한 사건이나, 나를 웃게 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출근길, 퇴근길. 잠자기 전이나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이 난무한다. 그 난무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글쓰기는 최고의 도구다. 난무하는 생각들이 많으니, 써지는 글이 많을 수밖에.


글은 머리(생각)로 쓴다고 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둘째, 글은 마음(감정)으로 쓰는 것이다.

: 생각을 거쳐 마음으로 쓴다!


일기를 한 번이라도 써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다만, 꾸준히 하지를 못했을 뿐. 어찌 되었건 우리가 일생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글쓰기는 '일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일기는 대개 '감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날씨가 어땠고 내 기분은 어땠다가 단골 메뉴였으니까. 어쩌면 감정의 '단지'나 '쓰레기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는 일기에 수많은 감정을 담는다.


지금의 글쓰기도 그와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글은 마음이 '동(動)'하여 쓰여진다. 글쓰기의 원동력은 '감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휘발성이 매우 강한데, 그것을 붙잡아 놓으려 나는 안간힘을 쓴다. 순간을 메모하고, 날아가는 감정이나 느낌을 잡아두려 애쓴다. 그러니 쓴다. 날아가는 내 감정들이 아쉬워서. 흩어지는 추억들이 안타까워서.


글쓰기의 가장 큰 선물은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감정이 크게 요동하면 할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 순간을 글로 표현하거나, 글을 써가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 본연의 감정은 나 자신의 '진액'이다. 


그러니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이 세상은 너무나 살기 바빠, 나를 잊고 살게 하는데 능수능란하다.


나 자신을 만나려 노력하고, 감정을 들여다보면 글쓰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셋째, 글은 깨달음으로 쓰는 것이다.

: 삶의 어디에나 배움과 의미가 있다!


나는 썼다.

글을 썼다. 안타까움을 썼다. 지나간 시간을 썼다. 그저 지나쳐 보낸 것들에 그렇게 큰 배움과 의미, 그리고 깨달음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피하고만 싶었던, 생각조차 떠올리기 싫었던 것들에 대해 써보니 거기엔 과연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들을 글로 남겼다.


글로 남긴 깨달음은 가히 보물이 된다.

20년 가까이 한 직장생활을 돌아보니, 힘든 날이 많았는데 힘든 그때를 떠올리면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여지없이 있다. 그리고 그 빛나는 것에 대해 글로 남겨보면 비로소 그것은 내게 가치 있는 무엇이 된다. 멋지고 예쁜 돌을 하나하나 수집하듯이, 과거나 현재의 깨달음을 하나하나 줍다 보면 어느새 깨달음에 흥건한 글들이 한가득이다.


사람은 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변하는 때가 있다. 그건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다. 어제와 같이 행동하고, 오늘 무언가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처럼 미련한 건 없다. 오늘 무언가를 달리해야, 좀 더 나은 미래가 올 거란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글로 남겨야 한다. 기록된 깨달음은 내 인생의 참고서가 되고, 오답노트가 되며 지도가 된다.


계속 써야 한다.

계속 깨달아야 한다.

계속 깨닫고 써야 한다.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가 없다.

항상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통틀어 지속될 그것들에 의해 나는 계속해서 숨을 이어 나간다.

어쩌면 그래서, 글은 '숨'으로 써 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와 먹고사는 것의 상관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