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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03. 2020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글쓰기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채워야 비울 수 있다.

돌아보니 가득한 손
그리고 고달픈 마음


하루가 고달플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여유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여유 중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가 가장 고달프다. 돌아보면, 나는 뭔가를 너무 많이 쥐고 있단 느낌이다. 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힘을 주고 있는. 재밌고도 서글픈 건, 쥐고 놓지 않으려 하는 것 중엔 걱정과 근심도 함께라는 것이다. 놓아도 될 것들마저 힘을 주어 꽉 쥐고 있는 우스운 꼴이라니.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땐 사리 분별이 잘 되지 않는가 보다. 단지 놓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마음만이 헛되이 강렬할 뿐.


경련이 일어나는 손가락과, 놓치지 않고 들고 있는 무거운 것들은 마음의 고달픔이다.

육체의 팔도 그렇고, 마음의 손과 팔도 자꾸만 놓지 않고 쥐려고만 하면 물리적이면서도 심적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손과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나는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견 그러한 나를 이해한다. 무엇 하나라도 놓치면 뒤처지는 세상이다. 어른이 되고 나면 내가 세상을, 세상이 나를 대하는 게 달라지다 보니 생긴 불안은 그렇게 서로에게 애처롭다.


놓아 비우고, 필요할 때 채우는 지혜와 마음의 여유는 과연 언제 오는가.


비우고 채우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들


그렇게 마음이 고달플 때.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이 꽤 있다. 무심코 지나치며 읽은 책의 한 글귀. 평소라면 당연하게 생각하던 명언.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영화의 한 장면, 한 대사. 나와 같은 처지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옆에서 보고는.


갑작스레 자기 객관화가 되면서, 우물쭈물 놓아도 되는 것들을 꽉 쥐고 힘들어하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 모습이 참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해서 가끔은 나를 보는 나는 마음이 아프다.

아픈데 웃기고, 그 상황이 웃기니 더 서글프고. 웃는 얼굴로 우는게 더 서러운 법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 많은 것들을 쥐고 있는가. 결국 나를 위해 그런 것 같긴 한데, 꽉 쥐고 있는 손 안엔 내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니 자주 글을 쓰곤 한다.

글을 쓰려면 펜을 들거나, 자판을 두들겨야 하니 손에 있는 것들을 놓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고스란히 마음의 손과 팔에 이입한다. 실제로, 글을 써가며 펴진 손가락 사이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그중엔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것들이 있긴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은 놓아도 되는 것들이 파다하다. '아, 내가 이런 걸 왜 쥐고 있던 거야'라며 글쓰기에 몰두하면 어리석은 내 모습이 글 속에 투영된다.


그리고 나는 투영된 글 속의 나를 보고 깨닫는 것이다.

어리석었구나. 마음고생이 많았구나. 팔이 아팠구나. 

이젠 좀 비우고 쉬자.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건, 그다음에 일어날 일 때문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놓고 비워진 나는 글쓰기를 통해 다시 채워진다. 마음과 생각이 채워지는 그 느낌은 사뭇 짜릿한 위로다. 나는 많은 것들을 놓아버리고 글을 분출하는데, 신기하게 그 어떤 기운과 열망이 다시 손가락을 타고 들어와 마음을 덥히고 생각을 또렷하게 한다. 어쩌면 그러한 순간에 중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글을 쓰지 않으면 금단 현상이 올 정도니까.




글쓰기는 그렇게 나로 하여금 비울 줄 알게 하고, 다시 많은 무언가를 채워준다.

그 반복의 힘은 오늘도 고달픈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채워야 비울 수 있다.


계속해서 비워둘 수도 없고,

계속해서 채울 수만은 없다는 걸,

오늘도 나를 관통한 글쓰기가 나에게 속삭인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글은 OOO(으)로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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