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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04. 2020

나는 가끔 신발끈을 동여맨다.

'순간'을 잡아채는 '가끔'의 미학.

'가끔'이란 단어의 손짓


추억이 묻어나는 그 옛날의 미니홈피.

그 시절, 한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유명세를 탔다. 사진과 함께 게시된 글은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였는데, 진지한 허세가 담긴 그 사진의 여파는 매우 커서 십 수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온라인의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이 그 사진을 왜 찍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대중들에게 잊히지 않으려 발버둥 쳐야 하는 연예인의 신분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그 사진과 글을 보다가 갑자기 '가끔'이란 단어가 나에게 손짓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지, 다가온 그 단어를 보며 뜨끔했다.


문득, '가끔'은 우리 삶에 쉼표와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가끔 무언가를 하는 우리'는 즉시 그 순간을 알아챈다. 우리는 일상이나 반복되는 일에 지쳐 있지 않은가. 삶의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고 누군가 설계한 듯 자동적으로 살아가는 느낌. 정신 차려보면 하루가 가고, 두리번거리다 몇 년을 보내는 삶에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순간을 인식해야 한다.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은 시간의 함정이자 횡포다. 매 시, 매 분, 매 초를 인식한다면 정신 차렸을 때 시간이 저 멀리 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어찌할 수 없다. 시간에 대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또렷하게 알아채고 만끽해야 하는 이유다.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게 '가끔'이란 단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숨 쉬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주 잊는다.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매일 하는 것이어서. 한 순간도 숨을 쉬지 않은 적이 없어서.


그러다 '가끔'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나는 깨닫는다.


"아, 내가 숨을 쉬고 있었구나."


'가끔'을 통한 삶의 반추,
나와의 만남


매일 숨을 크게 들이쉴 순 없다.

가끔 그렇게 숨을 크게 들이쉬며 우리는 숨 쉬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챈다.


이와 같이 너무도 당연해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이 많다.

가족들에게 당연한 듯 사랑한다 말하는 것을 생략하고, 고맙다 말하는 것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매일 먹는 밥의 소중함도 잊고, 타고 다니는 대중교통의 존재도 너무나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러다 가끔 가족들과 떨어져 봐야, 밥을 먹지 못해 봐야, 파업으로 대중교통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봐야 우리는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 무언가를 깨달으며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 삶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순간 자각한다.


반대로, 우리는 무언가를 '가끔' 함으로써 스스로를 자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운동화 끈을 동여매면 무엇이라도 결심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결심은 평소보다는 좀 더 단단한 다짐이 된다. 밑도 끝도 없이, 가끔 동여매는 운동화 끈은 나로 하여금 다시 달릴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달려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어느 출발 선상에 있게 된다. 발목에 조여 오는 유쾌한 긴장감을 오롯이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가끔'을 일상 속으로 불러와 보자.

그 단어를 '매일 하는 어느 것'에 갖다 붙이면, 그것은 생각지 못한 특별한 것이 된다. 또한, 매일 하지 않던 것이지만 '가끔' 무언가를 하면 또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가끔 산책하고, 가끔 그림을 그리고, 가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끔 내 생활 반경을 벗어나 보고, 가끔은 영화를 혼자 보고, 가끔은 소비만 하지 말고 무언가를 생산해보고. 아, 가끔 눈물도 흘리며 셀카를 찍어도 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순간은 잡을 수 없다는 게 어쩐지 행복과 닮았다.

그 순간을 인식하고 알아채면 행복은 아주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순간'을 잡아채는 '가끔'의 미학.

삶의 또 다른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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