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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20. 2020

내 글은 일기일까 에세이일까

그 어디에도 '나'는 있어야 한다.

'일기'냐 '에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일기는 훔쳐보는 맛이지 돈을 주고 사진 않는다.

반면, 에세이는 일기와 다름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은 지갑을 열고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여 읽는다. 


과연, 그 차이가 뭘까?


일기와 에세이를 구분 지어 설명하려는 글은 많다.

그러나, 글이 많다는 것과 나 또한 이에 대해 쓰고 있다는 것은 그 둘의 경계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방증이다. 세상엔 칼로 두부 자르듯 쉽고 명확하게 갈리지 않는 일들이 허다하다. 어렸을 땐 구분이 명확해야 세상이 이해가 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굳이 무언가를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상호 배타적으로만 보던 것들을, 상호 협력적으로도 보는 삶의 지혜는 그래서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를 구분 지어 보려 한다.

때론, 구분을 지어 그 둘의 차이를 알고 다시 합쳐보면 더 큰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모호하게 섞여 있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특성을 이해하면 내 입맛에 맞게 최상의 조합으로 섞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물은 꽤 짜릿하고 건강하게 달다.


일기 vs. 에세이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이 둘을 구분 지으려는 시도와 고민은 읽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쓰는 사람의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새로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사람의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 이유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 마음 한 구석에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가지런히 놓여 있을지 모른다.


그러한 관점에서,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을 하나하나 함께 짚어 봤으면 한다.


첫째, 나의 이야기 vs. 나와 우리의 이야기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나'로부터다.

사람은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삶을 살도록 운명 지어졌다. 그러니 이야기의 시작은 '나'다. 그게 일기다.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것. 다시 말하면,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것을 꾸준하게 쓰고 안 쓰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리고 일기는 꼭 노트에 무언가로 꾹꾹 눌러써야 하는 게 아니다. 하루를 돌아보는 마음이나 생각 또한 일기다. 어찌 되었건 일기는 나의 이야기고, 나만 보는 나의 이야기라 말할 수 있다.


반면, 에세이는 나로부터 시작하지만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나만 보는 게 아니라 남도 보는 이야기. 그리고 남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야기. 꼭 에세이가 아니라 자기계발서나,  지식을 전달하는 교양서적, 소설 등 모든 글과 책들도 저자를 통한 결과물이다. 그들의 생각, 경험, 세계관 등을 통해 나온 즉,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를 통해 나왔지만 '나와 우리를 아우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둘째, 배출(물) vs. 생산(물)


사람에겐 배출의 욕구가 있다.

생리적인 배변의 욕구를 떠올리면 된다. 배출의 욕구는 심리적 현상이다. 예를 들어 감정의 분출이 그렇다. 감정은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든 배출(또는 폭발)된다. '희로애락'이 그것을 담당한다. 일기는 어찌 보면 감정의 화장실이다. 누가 볼 것을 염려하지 않으며 속시원히 많은 것들을 떨쳐버릴 수 있다. 화장실을 일컬어 '해우소(근심을 푸는 곳)'라고도 하는 이유다. 일기는 억눌린 감정을 그때그때 풀어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배출, 배설 또는 폭발하지 않도록 해주는 아주 좋은 수단인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선 중간중간 화장실은 꼭 들러줘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세이는 생산이라 말하고 싶다.

생산물에 대해 우리는 기꺼이 무언가를 지불한다. 누군가 내 책을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시간을 들여 내 글을 기꺼이 읽어줄 수도 있다. 반면, 나의 지극히 사적인 배출물에 대해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아주 유명한 사람의 배출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순 있다.

다음의 유명한 말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을 추천하진 않는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X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X을 싸서 유명해질 것이란 생각은 금물!)


셋째, 내적 영향력 vs. 외적 영향력


누군가 내 글에 기꺼이 무언가를 투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향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무언가 영향을 받았기에 몸과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그 영향력을 우리는 '공감'이나 '깨달음'이라 한다.

'메시지'나 '의미'라고도 할 수 있겠다. 즉, 나를 포함해 누군가에게 그 어떠한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일기와 에세이의 경계를 초월한다.


그러나 일기는 대부분 이 영향력이 자신의 내부를 향한다.

반면, 에세이는 내부를 거쳐 증폭된 후 외부로도 향한다.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언급한 상호협력적 시너지의 좋은 예일 것이다. 일기(사색, 고민, 생각도 포함)를 쓰다 보면 깨달음이 생기고, 이 깨달음들이 모여 글이 되고, 그 글들이 엮여 훌륭한 에세이가 되는 것. 나는 이것이 수순이라 생각한다.


그 어디에도
'나'는 있어야 한다!


이 외에도, '감정'만 담느냐 '감정+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일기냐 에세이냐를 구분할 수도 있다.

'감정'만 담으면 지극히 사적일 가능성이 높지만, 거기에 '생각(논리, 철학, 지식 등)'이 담기면 특수성과 함께 보편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일기는 댓글이 달릴 일이 없지만 에세이나 출판 글은 다양한 피드백을 받는다. 즉, 남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게 되는 보편성을 획득한 결과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기든 에세이든 '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의 차이점이 있더라도, 시작점은 '나'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일기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 자꾸 '나'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많이 본다.

아무리 멋진 수식어로 점철된 글이라도, 그 안에 '나'가 없으면 진실되지 않는다. 진실되지 않은 글은 깊이 읽히지 않는다.




이렇게, 그 둘을 구분 지으려 했지만 그 둘은 명확히 구분할 것이 아니라 유기적 관계란 걸 다시금 깨닫는다. 

쉽게 생각하면, '일기를 쓰며 얻은 깨달음을 나누는 것이 에세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리고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사색, 생각, 고민으로)로부터기 때문에.


그래서 난, 글쓰기가 만만치 않을 땐 내 삶의 방향을 떠 올리고 또 떠올린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생산자의 삶'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선택!)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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