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r 18. 2020

직장 생활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서로 지켜 즐거운 ‘선(善)’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두기’


시절이 어수선하지만, 꽤 흥미로운 개념이 생겼다. 

집단주의에 익숙한 우리네에게 일부러 거리를 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 이번 바이러스는 비말이 주된 원인이라 하니, 비말이 닿지 않는 거리면 될 것이다. 그 거리가 정확하게 정해진 건 아니나, 누군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가까운 거리에서 기침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규정되지 않을까. 바로 그만큼이 서로 지켜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영역엔 ‘선’이 있다.

국경이 좋은 예다. 허용 없이 함부로 건넜다간 사단이 난다. 마음의 국경도 그렇다. 서로의 영역을 배려하지 않은 말과 행동은 침입과 다름없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선’은 상대적으로 쉽게 지켜지는데, 보이지 않는 ‘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선’은 상대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고,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영역의 너비를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무언가 사단이 일어나고 나서야 내 ‘선’과 남의 ‘선’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누군가 내 책상 서랍을 열어 멋대로 스테이플러를 꺼낸다면?
직장에서 누군가 내 사생활에 대해 멋대로 떠들고 다닌다면?
직장에서 누군가 내 외모나 성격에 대해 멋대로 평가한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러한 상황에서의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멋대로 넘어버린 선으로 인해, 직장생활은 힘들어지고 조직의 효율성도 곤두박질 칠 것이 뻔하다. 친분이 두터워도 이와 같은 갈등이 생기는데, 하물며 직장은 어떨까? 공과 사가 애매하게 걸쳐 있는 직장에선 그래서 그 ‘선’을 더 의식해야 한다. ('누군가 내'를 '내가 누군가의'로 바꿔 읽어보자.)


‘이 정도는 받아 줄거라 생각했는데’라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더 큰 문제만 만들 뿐이다. 

비말이 튀지 않도록 마스크를 쓰듯이, 직장에서 타인을 대할 땐 마음의 마스크를 장착해야 한다. 더불어, 상대방의 나라에 내가 들어간다 생각하고 여권은 있는지, 비자는 있는지, 허용은 받았는지 챙겨보는 것이 좋다. 어떻게 이런 것 하나하나 다 챙길 수 있겠냐는 마음이 들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들어있는 패키지가 바로 ‘배려’다.


내가 싫은 건 남도 싫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때, 서로의 ‘선’은 날카로운 것이 아닌 서로 지켜 즐거운 ‘선(善)’이 될 것이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상사가 조언할 때 고려할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