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은 나를 돌아볼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좋은 상사'인가?
아니, 이 질문 이전에 다시 묻는다. 당신은 '상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 일수도 있고, '아니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평생 신입사원으로 머물러 있지 않듯이 누구나 상사가 된다. 그러니 '아니다'라고 대답한 사람도 앞에는 전제가 붙는다. "아직"이라는.
이 글을 마주한 당신은 신입사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리나 과장 같은 중간 사원일 수도 있고, 차장과 같은 선임, 또는 부장이나 임원일 수도 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신입사원이라서 아직 조언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상사'라는 말보다 '조언'이라는 말에 더 초점을 두어 본다면, 살면서 후배에게 '조언'을 해본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중간 사원이나 선임급도 위로부터 조언과 충고를 많이 받지만, 어느새 아래에는 신입사원이 고개를 우러러 당신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부장이나 임원급은, 나는 조언하고 충고하는데 이미 도가 텄다...라고 말할 것인가? 사실, 오늘 이 글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이다. 그 조언이 후배들에게 정말 잘 전달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직 조언할 때가 아니라서, 조언이 서툴러서, 이미 조언은 나에게 있어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조언할 때가 아닌 사람들은 이를 유념해야 하고, 조언이 서툰 사람은 이를 활용해야 하며, 조언이 익숙한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이 어렸을 적의 어려움을 상기시켜야 한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말을 누구라도 잘 알지만, 그게 자신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당신이 어렸을 적 어려움은 무엇이었는가?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해서는 '조언'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업무 지시'도 그 범주에 속한다. 이것만 잘해도 당신은 '좋은 상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좋은 상사'는 조언과 업무 지시를 잘한다. 말장난 같지만 정말 그렇다. 언제나 정의와 이상(理想 )은 '선순환'을 전제로 한다.
자, 그렇다면 우리 후배들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오늘 이 글을 통해 각자 자신, 스스로의 옛날을 떠올려보는 것을 제안한다. '왕년'은 후배들 앉혀놓고 술 따라주면서 어쭙잖게 조언할 때 꺼내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간 요즘 후배들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을 꼬온대~!라고 충고한다. '왕년'은 자신을 돌아볼 때 꺼내보면 참 좋은 기제라는 것을 잊지 말자.
힘들었던 그 옛날 어땠는가. 무엇이 어려웠고, 선배들로부터 무엇을 도움받고 싶었는가? 직장생활은 억울함의 연속이다. 내가 하지 않은 일,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에도 욕먹기 다반사다. 사람들 다 있는데서 개박살이 나서 존재가 쪼그라들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책임져줄 것처럼 큰소리 뻥뻥 치다가 중요한 순간에 선배 또는 상사가 모든 덤터기를 나에게 씌운 경우는? 명확하지 않은 업무 지시로 인해, 밤새 많든 보고서를 고치고 고치다 욕만 배불리 먹은 적은? 옆 부서와 업무로 신명 나게 싸우고 돌아왔는데 공감은커녕 전후 사정은 알아보지도 않고 나만 혼내거나, 아예 무관심한 사람은 없었는가?
자, 답은 이미 나왔다.
자신이 어려웠던 그때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때 자신이 힘들었던 것을 상기하며 조언한다면, 내가 듣고 싶었던 것들에 기반하여 고민해본다면, 우리는 분명 좋은 조언을 우리 후배들에게 줄 수 있다.
좋은 상사로서, 조언할 때 고려해야 할 것들
모든 조언은 물론, 진심을 가지고 전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 바탕이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존경하지 않았던 선배가 "아, 그건 모르겠고.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부류였다. '진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이 사람들은 '아생연후(我生然後: 나 먼저 살고 본다)'의 전형이다. 물론, 직장생활에서 '아생연후'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공포영화에서 꼭 나 혼자 살겠다고 앞서서 탈출했다가 죽음을 당하는 사람처럼, 그 부류 대부분의 사람들 중 잘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간혹, 잘된 사람도 가뭄에 콩 나듯 보긴 하지만 그저 그 사람의 복이라 해두자. 어찌 되었건 요점은,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아예 '조언'을 하지 말자.
여기, 방금 옆에 부서와 업무로 인해 싸우고 돌아온 후배가 있다. 그 후배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야, 화 가라앉혀. 여긴 직장이야. 감정 보이면 지는 거야. 하수라고 하수."
이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 고수인 사람 못 봤다. 좋은 상사라면, 후배의 감정을 헤아려 주어야 한다. 방금 그 후배는 싸대기를 맞고 돌아온 기분일 것이다. 여기에 조언이랍시고 날린 감정적이지 말라는 말은 반대편 싸대기를 날린 것과 같다. 직장 생활에서 감정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므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 땐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 해주어야 한다. '존중'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어 중하게 여김"이다. 즉, 방금 싸우고 돌아온 후배가 얼마나 격앙되어 있는지, 상처를 받았는지를 파악하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전후 파악을 해야 한다. 우선 동감을 해주고, 전후파악한 내용을 가지고 대화해야 한다. 그리고는 후배에게 '감정'보다는 '감성'으로 일하는 법에 대해 조언을 준다. (참고 글: '감정'이 아닌 '감성'으로 일하기)
아마, 직장생활에서 맞이하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에 하나일 것이다. 본인이 한 실수든 아니든 간에, 조언이나 질책을 들어야 하는 순간은 온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은 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심한 질책을 들었을 때다. 왕년에 이런 일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그때 기분이 어땠는가? 직장인이라면 가슴 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표는 바로 이때 가장 크게 요동한다.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질책뿐만이 아니다. '조언'과 '칭찬'도 이에 해당된다. '조언'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어찌 되었건 잘못된 방향을 고쳐주는 일이므로 경중의 차이만 있지 질책과 결이 같다. '칭찬'도 마찬 가지다. 직장이라는 곳이 모든 사람이 동료이지만, 다른 면에선 경쟁자가 모인 집단이기에 섣불리 한 '칭찬'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해야 한다. 어떠한 피드백 (좋든, 나쁘든, 일반적이든)이라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신입사원이나 아직 때가 덜 묻은 사원들은, 선배나 상사를 우러러본다. 진심 어린 존경심이 아직은 있을 때. 선배나 상사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많은 것을 알고, 또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그러니까 자신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안다.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월급쟁이'란 타이틀은 모든 '책임'이라는 말 앞에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괜히 책임져 줄 것처럼 조언을 주고 나중에 발뺌하는 일 없도록 하자. 혹시, 책임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이해를 구하고 더 높은 상사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더불어, 내가 팀장이고 임원이라도 함부로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 '인사'가 대표적인 예인데, "자네, 내가 추천했으니 이번에 진급할 거야", "너 내가 어디 추천했다" 등의 말을 남발해선 안된다. 직장 내에서 '인사'는 발령이 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것 말했다가 일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 후배의 얼굴은 어떻게 볼 것이며, 무엇보다 그 후배의 떨어진 사기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책임지지 못할 일에 으름장 놓으면 절대 안 된다. 직급이 높더라도 같은 월급쟁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얼마 전엔 한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자신이 나를 자신의 자리 차기 후보 몇 순위에 넣어놨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1순위도 아니고 몇 순위에 넣어놨다는 말을 굳이 전화를 해서 말해야 했을까? 의도가 빤히 보이는 전화였다. 내가 널 이렇게 챙기고 있으니, 나한테 잘해라... 정도 말이다. 이러한 진정성 없고 얕아 보이는 수를 남발하는 선배들이 아직도 많다.
이거 하나만 잘해도 본전은 뽑는다. 그리고 상사가 아닐 때, 우리가 늘 하던 불평 아니던가?
"자기가 이렇게 하라고 했으면서 난리야! 진작 제대로 알려 주던가! 열 번을 반려당하고, 처음 버전 갖고 갔더니 통과되는 건 뭐야?"
이것을, 고스란히 바로 우리 아래 후배들이 읊조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렸을 적에 그리 많이 당했는데, 상사가 된 우리는 왜 이걸 되풀이할까? 상사가 되어보니 깨닫는다. 우리는 아랫사람이 알아서 잘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불어, 실무자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을 봐야 하므로 약간은 추상적인 언사가 나오는 것은 어느 정도 변명거리가 된다. 단, 그렇다고 어물쩡하게 추상화와 같은 컨셉을 이야기해놓고, 인상파와 같은 그림을 들고 온 후배에게, 왜 정물화와 같은 그림을 그리지 못했냐고 질책하는 게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방향부터 실무적인 방법까지 깐깐하게 간섭했다간 그것도 욕먹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별도의 질문이나 확인 없이 진행될 수 있는 아주 완벽한 업무 지시를 주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니 '중간보고'를 활용해야 한다. '중간보고'는 아랫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상사로서, 후배에게 진행되어가는 것들에 대해 먼저 물어보고 확인을 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방향대로 잘 따라오고 있는지, 실무적인 방법은 방향과 잘 맞추어져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줘야 한다. 그러면, 조언이든 업무지시든 조금 더 명확해질 수 있다.
(참고 글: 일 잘하기 프로젝트 #1. 중간보고)
내가 모신 상사 중에는 눈에 불을 켜고 잘못된 점을 짚어내는 사람이 있었다. 보고서의 내용은 뒷전이었다. 내용보다는 우선 흠을 잡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잡아내는 것들의 수준도 그리 높지 않았다. 줄 간격이나 단어, 조사, 표 위치, 글자체 등. 짚어내는 것은 수두룩 했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조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표정에는 역시 내 눈과 감각이 너보다 한 수 위라는 착각에 빠진, 의기양양한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것을 보고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느라 힘들었던 나의 노력은 더 선명하다.)
조언을 주는 선배나 상사 중에는, 자신이 우월해서 그렇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선배와 상사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하지만 존경은 아랫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니다. 더더군다나,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조언은 스스로 받을 수 있는 존경의 기회를 깎아먹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후배보다 회사 생활을 좀 더 했기 때문에,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큰 시야를 가지고 있기에 줄 수 있는 것이 조언이다. 그것마저 완벽할 수 없고, 언제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조언'은 말 그대로 도움이 되는 말이다. 아랫사람이 나보다 열등하다고 착각하게 되면, '조언'은 쉽게 '질책'이나 '충고'로 변모한다. 진심이 빠진 그러한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가끔은, 나도 후배들에게 왕년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정말 도움이 된다고 판단이 될 경우에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는 주로 실패하거나 힘들었던 그것을 꺼낸다. 나는 이렇게 해서 잘했었는데, 너희는 왜 그 모양이냐...라는 말은 내가 꺼내지 않아도 여기저기에 넘쳐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왕년'은 나를 돌아볼 때 더 많이 꺼내보자. 그리고 정말 나의 '왕년'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경우, 그리고 그 끝이 '너희는 왜 그 모양'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이해가 가게끔 잘 설명을 해주자. '왕년'과 '꼰대'라는 단어의 부정성에 묻혀, 우리의 소중한 경험과 지식,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때로는 '꼰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참고 글: 역(逆) 꼰대의 탄생)
진정성이 배어 있다면, 그것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면, 좋은 상사로서 고려할 것들을 생각하고 조언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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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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