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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2. 2016

생산하는 삶

우리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 어디쯤에 있을까?

Hi, 젊음!

잘 지냈어? 벌써 해가 바뀌었어. 고로 1년 만이네.

난 잠시 여행을 다녀왔어. 좋은 곳, 유명한 곳, 그리고 아름다운 곳곳을 보고 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4천 킬로를 운전하면서 생각하고 정리하고 인사이트를 얻은 순간들이야. 먼 길을 한 없이 달리다 보면 저절로  무념무상에 빠지게 되고,  무념무상의 밭에서  이런저런 생각과 아이디어가 피어나거든.


주위 사람들은 그 먼 거리를 어떻게 운전을 해서 가느냐고 하지만,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아니, 오히려 그 순간을 더더욱 기다리고 즐긴 것 같아.


아래  이야기할 이야기도 운전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거야.


"격렬하게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은 욕망"


어느 날, 휴대폰의 작은 디스플레이 속 가십거리 기사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 지금 무얼 하는 거지? 더 중요한 일은 뒤로하고 난 왜 이런 것에 허덕이고 있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항상 무언가를 '소비'만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이와 동시에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더라고. 아마도 수동적으로 소비만 일삼아왔던 허탈감이 주된 요인이었을 거야.


사실, 스쳐 지나가며 언젠가는 글을 써야지... 하는 것을 바로 실행에 옮긴 것도  그즈음인 것 같아.

그때부터 나의 브런치도  시작되었고.


세상은 '생산'과 '소비'의 반복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생산이 먼저인지, 소비가 먼저인지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되겠지? 그 둘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선상에 있으니까. 때로는 생산이 소비를 이끌기도 하고, 또 때로는 소비(수요)를 바탕으로 생산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또 하나.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생산'과 '소비'는 공산품이나 굴뚝 산업에서 나온 유형의 것은 물론, 무형의 것들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것.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과연 나는 당장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 내가 당장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찍어낼 수는 없잖아. 금수저의 수혜를 받아 당장 가게를 차리거나 내 사업을 할 수 없는 이상,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내게 큰 고민거리가 되었어.


생산하고 싶다. 그러지 않고 있어서, 그저 무의미한 소비만 하는 것 같아서.

더욱더 간절히, 격렬하게 생산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까?"


"생산자와 소비자 이론"


이런 고민으로 점철되었던 시간,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의 '생산'과 '소비'는 어떠한 모습으로 굴러가고 있는가?를 자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더라고.


여행을 하며 정리한 내 결론은 아래와 같아.


"생산자와 소비자 이론 by Sterdam"


좀 길지도 모르지만 하나하나 설명을 해볼게.


먼저 세상은 크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존재하고, 이를 한번 더 들여다보면 '홍익인간의 생산자'와 '똑똑한 소비자'가 존재한다고 봐. 물론, 생산자와 소비자는 '선'과 '악'의 개념이나 'Pros' & 'Cons'와 같은 상반 또는 좋고 나쁨의 관계는 절대 아니야. 상대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이란 개념이라고 보면 더 정확하겠지?


일단, 먼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해보자.

'생산자'는 말 그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존재로, 물건과 같은 유형의 것과 서비스, 아이디어, 창작, 예술 등의  무형의 것까지 그 생산물에 포함될 수 있겠지.


'소비자'는 간단히 말해, 이러한 생산자의 생산물을 사용하고 즐기는 존재라 할 수 있고.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때로는 '소비자'의 패턴이나 욕구를 파악한 생산자들이 그 수요에 맞추어 내도록 '생산자'를 자극하거나 오히려 그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지.


"그렇다면 '홍익인간의 생산자'와 '똑똑한 소비자'는 누구일까?"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 둘 '생산자'가 보이게 되고, 또 '생산자' 위에는 다른 존재가, 그리고 그 바로 아래 '소비자'와의 사이에도 다른 존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어.


먼저, '홍익인간의 생산자'를 설명해 볼까?

내가 정의하는 '홍익인간의 생산자'는 '생산자'이긴 하되 생산해낸 생산물이 사람들에게 유/무형으로 큰 도움이 되고 사람들의 삶과 존재에 Benefit을 주는, 말 그대로 소비자를 이롭게 하는 생산자를 말해.


아무리 무언가를 생산해 내어도, 그 생산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면 아마 소비자들에게 알아서 철저히  외면당할 거야. 즉, 팔리지 않고, 사용되어지지 않는 생산물이라는 거지. 여기에서 그냥 '생산자'와 '홍익인간의 생산자'는 크게 갈리기 시작해.


그냥 쉽게 예를 들어 보자. 페이스북, 에어비엔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은 소비자들의 삶을 진일보시키고 Benefit을 주거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은 생산자들이야. 순기능과 역기능이라는 논제는 잠시 잊고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하고, 컴퓨터라는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보급, 또한 차별화된 제품으로 사람들의 감성에 무언가의 희열을 준 제품/ 서비스들.

물론, 최근 유행하는 IT나 스타트업 외에도, 기존의 제조업도 그 범주에 해당될 수 있겠지.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생산해내어서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으니까. 


자, 예술가나 작곡가, 작사가는 어떨까? 연예인은 어떻고? 어렵게 보지 말고, 버스커 버스커를 한 번 보자. '벚꽃엔딩'이라는 노래를 생산한 장범준은 그냥 '생산자'에서 '홍익인간의 생산자'로 거듭났어. 왜냐하면, 그 노래 한 곡으로 벚꽃이 날리는 그즈음에 사람들의 감성을 아루만져 주니까. 그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추억에 잠기고, 감성적인 benefit을 충분히 느끼게 되었거든.


이처럼 '홍익인간의 생산자'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들 (소비자)를 이롭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알아서 적극적으로 그것을 소비한다는 점이고, 또 이러한 생산자들은 소위 말해 '대박'을 친다는 거지. 다시 말하면, '생산자'가 될 거라면 '홍익인간의 생산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사람들도 이롭게 하고, '생산자'로서 자부심은 물론 그에 상응하는 '부(富)'도 가질 수 있게 되니까.


자, 다음은 '똑똑한 소비자'에 대해서 짚어 볼까?

내가 정의하는 '똑똑한 소비자'는, '소비자'이긴 하되 피동적인 자세를 뒤로하고, 소비는 하되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 왜 소비하는지 목적이 명확한 '생산자'로서 거듭날 수도 있는 과도기적인 존재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로서 거듭날 수 있는 과도기적'인 존재.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잭 안드라카'는 췌장암 진단키트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억만장자가 된  열다섯 소년이야. 그 친구의 인터뷰를 보면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것을 발명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해 "정말 그저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을 조합하고 공부했을 뿐이다. 인터넷 속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라는 대답을 했어. 똑똑한 소비 (왜 무엇을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목적이 명확했고, 철저히 다른 생산자들의 생산물을 수집)를 통해 '홍익인간의 생산자'가 된 아주 단적인 예라고 봐.


또는, 노래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소비자)이 "아, 나도 언제까지만 음악을 듣기만 하지 말고, 만들도록 작곡을 공부해야겠다."  다짐하면,  그때부터 똑똑한 소비(그저  흘려듣는 것이 아닌, 영감을 위한 참고 또는 감상)가 시작되고, 노래를 만들어 '생산자'가 돼. 그리고 그 노래가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져 히트송이 된다면 마침내 '홍익인간의 생산자'가 되는 수순.


"그들의 특성 파악하기"


이번엔 그들 (홍익인간의 생산자부터 소비자까지)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 피라미드 모양의 양 옆 화살표를 한 번 봐줘.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인 방향과 특성에 대해  이야기할 테니 일단.


먼저, '홍익인간의 생산자'로 갈수록 '적극적'인 성향이 강하고 '소비자'로 갈수록 그 적극성은 약해진다고 봐. 단순한 Step이론 일 수 있어. 즉, 피동적으로 소비하던 사람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하면 '똑똑한 소비자'가 되고, 계속해서 적극성이 강해지며 피라미드를 올라간다는 거지. 어떻게 보면, 적극성이 있어야 그 피라미드를 올라갈 수도 있는 거고. 100%는 아니지만, 크게 반대는 안하리라 믿어.


'Risk측면'은 아래에서 위로 단계적으로 적용된다기 보다는 'Bipolar' 성향이 강해. 즉,  '홍익인간의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생산물의 성공에 대한 예측이 매우 어렵다는 것. 반대로 그냥 '소비자'는 피동적이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 휩쓸리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Risk에 노출이 쉽게 될 거야.




격렬하게 생산자가, 그것도 '홍익인간의 생산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소비자'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야.


다시 말하지만 서로는 상대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니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까?


자, 윗 글들을 읽고 잠시라도 '나는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까?' 또는 '아, 정말 난 너무 소비자로만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의도를 잘 이해해주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고맙고.


사실, 나도 아직까지 무엇을 '생산'할 수 있을지 명확하게 알아내지 못했어. 다만, 너무 피동적인 '소비자'로 살았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조금은 더 '똑똑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생산자'가 되기 위해 마음만 먹어왔던 '글쓰기'를 시작했어. 소설과 작사, 에세이 그리고 내가 주재하고 있는 네덜란드 이야기와 멘토링에 대한 글이 그것들 이야. 직장인으로서 병행하다 보니 부족해. 아니,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때로는 거대한 것을 '생산'해내는 이들 (ex. 마크 저커버그, 또는 직장을 박차고 성공 가도를 달리는 스타트업 창업자, 수억의 저작권료를 받는 작사가 등)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또 내 스스로가 매우 초라함을 느껴.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면 내일이 없듯이 내가 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되, 언젠가 되어야 할 '홍익인간의 생산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젊음들이 있다면, 너무 거창한 것을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보다는, 나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무엇을 '생산'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음 좋겠어.


당장의 짧은 글 하나, 작심  3일일지언정 하는 다짐, 봉사활동, 낙서 하나, 그림 하나,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도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야. 물론, 현재 자신이 해야 하는 것들이나 직업에도 충실하고, 그것 또한 생산적으로 해내려는 마음가짐도 여기에  포함돼.


회사 내에서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고위 임원께서, 직장 선배로서 진심으로 격려해주실 때 사용하는 글귀가 있어. 그 글귀를 마지막으로 나는 또 무엇을 어떻게 '생산'을 할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려고. 그래서 종내에는 '홍익인간의 생산자'가 되려고 해.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스테르담아, 사람은 태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항상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단다."


[중용 23장]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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