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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6. 2020

페르소나를 활용한 글쓰기

결국, 글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작가님,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뭘 써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정말로 뭘 써야 할까.

나 또한 글쓰기를 결심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곳엔 글쓰기를 결심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있다. 그때의 고민을 되새긴다. 절실하게 묻는 분들에게, 더 절실하게 답해드리기 위해.


상당히 외로웠던 걸로 기억한다.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후에 의지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지만, 어쩐지 느낌은 황량한 사막에 홀로 버려진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가장 걸리는 게 '어디에 써야 하지?', '무엇을 써야 하지?'였다. '어디'는 이미 브런치에 쓰기로 마음먹은 터였으니, 두 번째 질문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내 이야기를 쓰자니 일기가 될 것 같고, 나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무언가를 이룬 사람도 아닌데라는 생각. 

역시 내 발목을 가장 강하게 잡는 건, 다름 아닌 나인 것이다. 가만있어보자. 그래 잘 왔다. 내 발목을 잡는 나를 데려다 앉혀 놓는다. 마주 앉아 곰곰이 나를 관찰한다.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있다.

'페르소나'. 사회적 가면이다. 사회적 가면은 삶에 있어 고달픔을 주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정체성이 규정된다. 정말 애증과 같은 개념이다. 버리려야 버릴 수 없고, 내가 원하는 가면만 가지려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가면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어찌 보면 나름의 노력을 통해 얻은 것들이다.


직장인, 부모, 자녀, 친구, 작가 등등.


나에게 그 사회적 역할은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남들에겐 나의 그것이 새로운 모양의 가면이란 걸 우리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며,
나를 관통한 글만이 온기를 지닌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부터 써야 하는 것에 대해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단, 그것은 나의 역할을 제대로 규정하고 통찰하여 나온 이야기여야 한다. 그냥저냥 쓰거나 서술하면, 그것은 나를 관통하지 못한다. 나를 관통하지 못한 글엔 진실성이 없고 누군가에게 읽히지도 않는다. 손님에게 차가운 음식을 내어 놓은 것처럼. 나를 관통해야 마침내 온기가 있는 음식과 같은 글이 완성된다고 나는 온 체중을 실어 강조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떠올려 보자.

즉, 제1의 사회적 가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직장인이란 가면이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출근을 하고, 엑셀을 돌리고, 보고서를 만들다가 때론 칭찬을 때론 잔소리를 듣다 퇴근하는 사람이다. 그 수준으로 글을 쓰면 어떨까? 그것은 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이 시간을 투자해 읽을 가치가 없다. 자신의 이야기가 하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은, 딱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메타인지를 통해 나를 조망한다.

한 발짝 떨어져 본 나는, 어느 직군에서 전문성을 겸비한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익숙해서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선 어느 전문 영역에 있는 현직자다. 고로, 나는 벽돌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집을 짓는 사람이란 걸 알아채야 한다. 내가 가진 '직업' 그리고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업'에 대해 정의하고, 직장에서 맞이한 희로애락에 대한 감정과 깨달음에 정리를 해보는 것.


'직장내공'과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는 그렇게 쓰여졌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나의 이야기며, 직장인으로서 뒤를 돌아보아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 확신했고 생각보다 더 대단한 직장인들을 응원하고 싶었던 것. 즉, 나의 페르소나로부터 시작된 글쓰기였다.


다른 저서들도 다르지 않다.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는 주재원 시절, 누구보다 이 시장에 대해서 잘 알아야겠다는 사명감에서 시작되었다. 역사와 문화, 사람을 공부하고 왜 암스테르담의 집들이 기울어져 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또한, 나의 페르소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두 아들의 아빠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로 세상을 배워 나갔다. 그 와중에 얻은 경험을, 두 아이에게 아빠로서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책으로 아이들 두 손위 쥐어지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견디는 힘'은 내 브런치 글을 보고 세계관에 동한 한 편집장님께서 제안을 주신 기획 도서였다.

내 갖가지 페르소나로부터 얻은 통찰과 깨달음. 그것들이 고스란히 그곳에 적혀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나의 페르소나로부터 시작되어 확장되고 또 확장된다.


나는 페르소나를
'활용'하자라고 말한다.


눈치챈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페르소나를 '활용'하자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악용'할 수도, '이용'할 수도 있다. '악용'은 다른 개념이므로 빼고 본다면, '이용'과 '활용'의 차이는 단방향이냐 쌍방향이냐의 차이라 생각한다. 즉, '이용'은 어느 한쪽만 이득을 보는 반면, '활용'은 양쪽 다 이득을 보는 구조다. 


그러니, 내가 페르소나를 '활용'하면 내 본모습에도 이득이 되고, 페르소나에도 이득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직장인으로서의 페르소나에 대해 글을 쓰면, 그것은 객관화가 되면서 좋은 글의 주제가 되고, 그것에서 오는 깨달음으로 인해 본업인 직장인으로서 더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일전에 글쓰기는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는 말을 했었다.

이는, 뭔가 있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글쓰기가 쉽지 않지만, 그저 내 이야기를 쓰면 되기에 글쓰기는 어렵지 않다고 표현한 것이다.


나를 관통한 글, 가장 개인적이어서 창의적인 글.

그것은 온기와 진실성을 지니고 사람들에게 훌륭한 영향력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는 나의 페르소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페르소나 안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결국, 글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 정보


[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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