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스테르담 Jan 03. 2016

자장라면을 끓이며

모든 것엔  때가 있는 법. 때를 기다리는 것도 만드는 것도 바로 나!

새해 들어 며칠 지나지 않은 오늘 아침


내가 기억 못한 작년의 모든 피로들을 몸이 기억해내어, 지난 저녁부터 정확히 12시간을 자고 난 후에 맞이한 상쾌한 아침이다. 아침은 그렇게 상쾌했으나, 몸은 매우 허기져 있다. 어제 오후 5시부터 잠이 들었으니 반강제적으로 저녁을 굶은 것이고 저녁 8시쯤 일어나려던 낮잠 아닌 낮잠의 요량이 밤을 넘어갈 때쯤, 몸은 많이  당황스러워했으리라. 물론, 아침까지 반듯하게 누워 있던 것도 몸이었으니 몸이 몸을 탓하기도, 내가 나를 탓하기도 그렇고 그런 상황.


일요일 매우 이른 아침에 가족들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덕분에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혼자의 시간이 오면  가장하고 싶은 일이 독서나 음악 감상, 또는 영화나 그동안 미루었던 드라마를 보는 것. 가끔 너무 소비성이 강하다고 느낄 때는 글을 쓰거나 미래를 대비하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오늘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자장라면 끓이기다.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배고픔을 해결해야만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가 내가 왜 자장라면을 일어나자마자 끓여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참으로 고마운 이론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큰 고민에 맞딱들인다


일어나자마자 자장라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참으로 하늘에 감사할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몇 개를 끓일까였다. 지금의 배고픔으로 보건대 하나로는 분명히 모자랄 것이요, 두 개를 끓이면 먹다가 남기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은 내 인생 다년간의 경험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나를 끓이는 것이 이성에 가깝다면, 아마 두 개를 끓이는 것은 감정과 충동/ 본능에 가까울 것일진대, 어느 새 두개 분의 물을  올려놓고 끓기만을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며 역시 나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깨닫는다.


역시나...


그릇에 옮겨진 자장라면 2인분의 비주얼은 생각보다 더했고, 김치의 도움이 있으면 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치 냉장고 문을 열어 주섬주섬 반찬으로 내었다. 반쯤 먹는 동안 자장라면은 먹다가 남긴 후 나중에 먹기에는 힘든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 모든 것은 때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 웃기지도 않다. 자장라면 먹다 뭔 생각이람.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재밌어진다. 어제 가족 중 누군가가 먹다 남긴 도넛은 접시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이 도넛은 아마도 아침에 일어나 허기진 가족 중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전자레인지를 향하여, 이내 그 밤새 동안의 허기짐을 달래 줄 것이다. 즉, 하루 이틀이 지나도 먹을 수 있는 '때'를 가지고 있다. 김치는 또 어떠한가? 오히려 오래 두면 둘수록 그 맛이 진해지고 매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논리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난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갑자기 때아닌 '때'를 생각해 내었고 그렇게 피식 웃었다.


'때'를 기다리기란 참 쉽지 않다


해야 할 때, 해야만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때, 해서는 안되었을 때 등. 그 '때'를 잘 알아채고, 적절하게 때로는 미리 대응하는 것. 또는 놓친 '때'를 후회하기만 하지 말고 잘 수습하여 다음의 '때'를 기약하는 것. 쉽지 않지만 살아가면서 꼭 마주치고 경험하며 또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배불러도 꾸역꾸역 가능한 맛있게 자장라면을 다 먹었다. 지금이 자장라면을 먹을 때라 생각하면서. 남겨진 자장라면이 다시 먹기에는 얼마나 끔찍할지를 생각하면서.


P.S


'때'는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내가 직접 그 '자장라면'을 끓인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누구를 위하여 사진을 찍는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