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인고를 느끼는 지금은 길지만, 삶은 생각보다 짧다
글쓰기의 무서움, 두려움
글은 어느새 일상 루틴이 되어 나를 숨 쉬게 하고 있지만, 때론 그것이 무서울 때가 있다.
숨 쉬는 것 그 자체가 버거울 때가 있지 않은가. 삶은 아름답다가도 그렇지 않고, 힘들만하면 다시 용기를 주는 요상한 현상이다.
그리고, 글쓰기도 그와 마찬가지다.
글쓰기의 무서움을 모르고 무심코 달려든 건 아니다.
누구나 글쓰기의 무서움을 잘 안다. 그 무서움은 다시 '두려움'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나는 글을 잘 못쓴다',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연한 생각과 마음이다.
작가도 아닌데, 평생 글을 써오지 않았는데란 두려움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다. 글로 유명해진 사람들조차, 내 단언하건대 원고지나 모니터 앞에서 꽤 마음고생을 했거나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글쓰기,
무서움'과 '용기'라는 모순이자 역설
나에게 글쓰기가 가장 무서울 때는 다음과 같다.
글쓰기가 익숙해졌는데, 도통 뭘 써야 할지 모를 때면 그게 참 힘들다.
나름 잘 살고 있는데, 가끔 내가 왜 사는 거지란 회의를 할 때와 그 마음이 비슷하다. 일상은 흘러가고, 글쓰기의 익숙함은 변함없는데. 손 끝이 간질간질한 그 느낌은 여전한데. 말 그대로 시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떠오른 것들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나는 모니터 앞에 앉는 게 버겁다.
글쓰기가 무서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영감'이다.
이 영감은 인사이트가 되고, 일상을 다르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문득 떠오른 그 영감이 날아갈까, 샤워하다가도 뛰쳐나와 메모를 하는 나를 보면 그 자체가 즐거움일 정도다.
그러나 그 좋은 아이디어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할 때의 고통은 썩 유쾌하지가 않다. 사실, 머리에 번쩍하고 든 영감들은 대개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의 파편과도 같다. 즉, 나머지는 내가 만들어내야 할 인고이자 과제다. 아주 가끔 그것이 익숙하게 흘러갈 때가 있지만, 아직도 글로 표현해내지 못한 영감들은 나를 괴롭히는 (즐거움이자) 고통이다.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할 수 없는 마음이다.
즉, 나는 나를 표현하는 과정으로의 글쓰기를 하지만 결국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꽃씨처럼 날아가 그 마음에 싹을 틔워주길 바라는 결과로써의 글쓰기를 바라기도 한다.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을 살자고 마음먹었으니, 내 생산물인 글은 나에게서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깨달음과 통찰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이곳의 함정에 빠질 때가 많다. 즉, 남을 신경 쓰다 거기에 '나'가 빠진 글을 쓰는 것이다.
함정도 많고,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나의 한계를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많기에 글쓰기는 무섭다.
그러나, 글쓰기는 모든 것을 포용함으로써 이 두려움을 상쇄한다.
글이 써지지 않는 오늘, 지금도 나는 이 마음 자체를 써나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글쓰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더 깨닫는다.
나는 얼마나 더 의미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들을 쏟아낼 수 있을까.
더 많은 글들을 쏟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감사할 일인지 모르겠다.
글쓰기의 인고를 느끼는 지금은 길지만, 삶은 생각보다 짧다는 생각에.
그래도 한 자라도 적어야지 마음 먹는다.
P.S
문득,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용기란 두려워하는 일을 매일 하는 것이라고.
글쓰기는 결국, 나에게 무서움이자 용기라는 '모순'이자 '역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