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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09. 2020

대충이라는 해충, 완벽이라는 맹독

직장에서 정신줄을 놓는 '실수'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 또 틀렸네
'대충'이라는 '해충(害蟲)'


직장에서의 실수는 다사다난하다.

나보다 더 바쁜 게 실수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실수는 튀어 오른다. 보고서에 올린 오타나 잘못된 숫자부터, 잘못된 수신자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유첨을 빼먹고 보내는 메일까지. 어쩌면 이것은 늘상 있는 애교 섞인 실수일 수 있겠다. 


문제는 아무리 예쁜 애교도 '늘상'이라는 말과는 상충한다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웃는 사람은 오히려 침을 불러 모을 가능성이 높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수의 빈도는 반드시 줄어야 하는 것이다.

'아, 또 틀렸네'를 반복해선 안된다. 


직급이 낮을 때는 그것이, 선배나 상사에게 꼰대가 아닌 정당한 조언을 하게 해 줄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직급이 있을 때의 실수는 치명타다. 더더군다나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상대방에게 그 실수가 발견되었을 때는 온종일 마음이 무겁다. 실수를 하더라도, 티 안 나게 하거나 들키지 말아야 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마저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사내 정치와 암투는 이렇듯 치열하다.


오랜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실수는 대개 '대충'에서 온다는 걸 경험했다.

많이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부분인데, 신기하게도 실수는 언제나 나로 하여금 대충 했던 그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는 대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그러하니 나는 그 순간을 대충 보낸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사실, 실수가 잦을 때를 돌이켜보면 이 일을 온전히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끝내버리려 하는 마음이 앞선 경우가 많다. 마치 끈적끈적한 것이 손에 묻어 곧바로 물로 씻어 버리고 싶을 정도의 조급함. 앞뒤 재지 않고 한 가지에만 몰두하여 팔린 정신은 많은 것을 그르친다.


그러다 보면, 동명이인에게 이메일을 잘못 보내거나, 숫자나 엑셀의 로직은 여지없이 틀려 있는 것이다.

가끔, 정말로 하찮아 보이는, 어린아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실수를 할 때면 자괴감이 한가득이다.


상황이나 남 탓할 필요 없이, 온전히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대충'이라는 '해충(害蟲)'은 내가 키운 것이니까.


완벽해야 한다는
오만과 편견


그렇다고 실수 하나 없는 완벽을 나는 추구하지 않는다.

사람은 어차피 완벽할 수 없다. 살바도르 달리는 어차피 완벽할 수 없으니, 완벽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온 체중을 실어 동의한다. 


정말 무서운 건, '완벽한 척'하는 것이다.

또는 완벽해야 한다는 오만과 편견이다. 자신은 완벽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를 많이 봐왔다.


보고서의 내용보다는 PPT안의 글자체와 선, 공백과 여백의 오와 열을 (시간을 넘겨 가며 지나치게) 맞추려는 것.

경우의 수를 두세 가지 고려한 컨틴전시 플랜을 넘어, 자신의 노력을 부각하기 위해 열 가지 넘게 준비하는 것. 완벽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내 일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부서의 영역까지 침범하여 일 하는 것.


적당히 해도 될 일에 완벽이라는 말을 같다 붙여 변질된 집착은 여럿에게 '맹독'이다.

그것은 정말로 독과 같아서 조직의 사기를 좀 먹고, 열정을 사그라들게 한다. 회사는 개개인의 사기와 열정을 끌어 올리려 상상 이상의 돈을 쓴다. 그러니, 완벽해야 한다는 집착이 독이 될 때, 주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주의 깊게 돌아봐야 한다. 혹시라도 나는 어떠한 독에 노출된 건 아닌지, 행여나 내가 독을 뿜고 있는 건 아닌지.


진정한 고수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을 아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더.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실수의 빈도를 줄이고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실수를 했을 때 그저 비난하지 말고, 나의 실수를 떠올리며 포용해야 한다. 더불어, 그 실수가 나의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을 점검할 수 있는 시야를 갖는 게 백 번 낫다.


주위에 완벽을 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완벽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본다.

그것이 더 나아지려는, 그러니까 '완벽'보다는 '완성'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라면 무조건 배워야 한다. 그러나 적당히 해도 될 일이나, 중요하지 않은 일에 보이는 집착이라면 '저런 건 배우지 말아야지'란 '배움'으로 승화하면 된다.


'대충'이라는 '해충'은 만들지 말고, '완벽'이라는 '맹독'을 퍼뜨려선 안된다.

'해충'과 '맹독'을 제외하고 보면, '실수'는 인간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 


다만, 그것이 직장에서 나에게 약점이 되지 않도록 실수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정신줄을 놓는 '실수'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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