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시는 분의 기대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쓰고나서부터는 좀 더 읽으려 노력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 기대치에 대해서는 한 참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 질문의 배경이 된 글쓰기로 잠시 돌아가 보면.
글을 많이 쓰고 안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글쓰기에 있어서 '많고' '적음'이란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몇 천 개, 몇 만개를 쓴들 그게 무슨 의미일까? 글쓰기라는 영역은 끝이 없기 때문에 모든 수치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많이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하게 글쓰기를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 또한 많이 쓴 것보다는, 꾸준하지 못한 내가 그래도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어찌 되었건, 꾸준히 글이 나오는 데 있어서 '독서'가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건 합리적 추론이긴 하다.
많이 보지 않으면 많이 쓸 수 없고, 많이 쓰려면 많이 봐야 한다는 건 그 문장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만, 나는 기대한 것보다 충분히 읽지 못했는데 그 이상의 글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던지곤 한다.
'사색' 그리고 '메모'
그래서 발견한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는 바로 '사색'과 '메모'다.
돌아보니, 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고민이나 염려가 아니다. 부정적 측면에서의 생각이 많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자꾸만 던지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러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글쓰기를 통해 그러한 나를 '자각'할 수 있었다.
왜 사는가, 왜 먹는가부터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단 걸 알았고, 나는 글쓰기 이전에 이것들을 하나하나 메모해나갔다. 그리고 그 질문 하나하나는 결국, 글 하나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메모장엔 아직 글로 태어나지 못한 수많은 질문들이 얽히고설켜있다.
언젠가, 그것들을 세상에 자유롭게 풀어줘야지... 하지만 풀어 놓아주는 수보다 또 다른 질문이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 서글프기도 하지만, 또 다른 쓸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희열은 글쓰기의 선물이다.
즉, 독서도 중요하지만 '사색'과 '메모'는 글쓰기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글쓰기'는 '삶쓰기'다!
메모 속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결국 그것은 '삶'에 대한 의문이다.
'왜'라는 한 글자만 붙여도 삶은 새롭다. 지겨운 일상도, 뻔한 내 주위도.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일상이 반짝이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러면 나는 그저 그것에 대해 쓰면 된다.
'삶'은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는 사람, 살아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당연하게 보면 당연하고, 당연하지 않게 보면 당연하지 않은 것. 말장난 같지만, 저마다의 마음은 이미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을 것이다.
햇빛 쨍쨍한 날.
누군가는 삶의 행복을 쓸 것이지만, 누군가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할 것이다. 날씨가 좋아 기분 좋은 건 당연하지만, 이별한 사람에게 햇살은 오히려 아픔이다. 비 오는 날은 우중충하지만, 그게 마음에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그 '감정'들. 같은 일상도 다르게 느끼는 '마음'들.
내 '감정'과 '마음'은, 이미 '삶'을 요리조리, 이리저리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요동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러니 글쓰기도 시작되지 않거나, 이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은 뒤로 한 채, 오히려 '어떻게'에 매진한다. '글 쓰는 법', '글 소재 찾는 법' 등.
그저, '삶'을 쓰면 된다.
나의 이야기, 나의 마음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채면서 써 내려가면 된다. 소재도 다 우리 삶에 널려져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널려져 있는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와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이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독서를 무지막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글쓰기를 마음먹고는 계속해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책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뭘까?
정리하자면, 나는 '삶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가 꾸준히 이어지는 이유는 '삶'이 꾸준하기 때문이다. 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어쨌든 살아가지 않는가. 영문도 모르고 살아가는 운명이 가련할 때가 있지만, 그러하기에 그 가련함에 대해 나는 쓴다.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는 인생의 장난, 삶은 왜 이토록 행복은 찔끔 주면서 고난과 절망은 많이 주는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순간순간 느낀 감정과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모든 게 글의 소재고, 모든 게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때론, 글쓰기를 진작 시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회의를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깨닫는다. 아마도 글쓰기엔 때가 있다고 말이다. 제대로 된 인생에 대한 의문을 던질 때, 나의 상태를 자각할 때 비로소 '삶쓰기'는 시작되고 그것이 곧 '글쓰기'가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