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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1. 2020

글쓰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는 것이다.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는 그렇게 완성된다.

나는 글쓰기가 참 좋다.


글을 쓸 때 내 마음은 편안해진다. 

그 어떤 소비와 쾌락의 자극으로도 붙잡을 수 없었던 마음이, 신기하리만치 글쓰기를 통해 잠잠해진다. 격앙되었던 마음은 가라앉고, 가라앉은 마음은 떠오른다. 글쓰기는 어느새, 나보다 더 내 마음을 잘 알아서 마음의 중심이 어딘지를 꿰뚫어 흔들림을 줄이고, 기어이 편안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것과 써내려 가는 것은 별개다. 하얀 종이의 여백. 커서가 움직이는 빈 화면. 글쓰기를 마음 먹지만, 그 여백과 빈 화면 앞에 나는 압도당한다. 당장, 저 거대한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두려움이 몰려온다. 자칫,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까 하는 염려도 몰려온다. 정말로 그러할 때, 나는 자책을 서슴지 않는다.


그나마, 나는 수많은 시도를 통해 실패의 수를 줄여 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작가'란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꾸준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가 꾸준히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감히 '성공'이란 말을 갖다 붙여도 될 정도다. 즉, 글쓰기는 나의 생활이 되었고 숨이 되었다. 그 이야기는 글쓰기가 두려움에도, 써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달리 표현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왜 두려울까?


나의 글쓰기를 돌이켜 보건대, 지금도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채우기'에서 온다.

앞서 말한 '여백'은 무한한 가능성일 수도 있지만, 그보단 '채워지지 않은' 무엇이다. 그것이 '채워야 할' 무엇으로 변하면 더 무섭다. 글쓰기가 이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마음엔 몇 가지 고정된 관념이 있다.


첫째, 글은 어느 정도 길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어떤 서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단 몇 줄의 것은 글이 아니고 글을 쓰려면 어떤 서사를 이어 나가야 하는데, 과연 그 시작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사각 소리가 나지 않고 머뭇거리는 연필, 자꾸만 무언가를 쓰고 채우라고 독촉하는 컴퓨터 화면의 커서. 시계의 초침 소리마저 느껴질 것 만 같은 강박의 긴박감 앞에, 글쓰기를 애초에 포기하고 주저앉은 적이 꽤 많다.


고로, 나는 글쓰기의 두려움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한다.


내어 놓으니 글쓰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깨달았다.

글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는 것'이란 걸. 뭔가를 채우려 할 때, 나는 있는 것 없는 것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내 지식은 미천하고, 경험 또한 한계가 있다. 그러니 그 빈 공간을 채워 나가는 건 말 그대로 곤욕이다. 가장 큰 문제는, 무언가를 채우려 하면 할수록 그 가운데 '나'는 없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가장 큰 목적은 '나'의 발현이다. 글의 장르를 떠나, '자아'가 빠진 글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딱딱한 지식 전달 도서든, 상상력이 담긴 소설이든. 저자의 의도는 없을 수 없으며, 그 가운데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의견은 반드시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괴로움은 오히려 내게 깨달음을 주었는데, 그래서 힘을 빼고 쓸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힘을 빼고 나니, 나는 그때부터 무언가를 채우기보단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느낌, 내 경험 그리고 많고 많은 깨달음들.


그것들이 생산물이 아니라, 아직은 헐거운 배출물이라 할지라도.

글쓰기를 하기 전에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이 바로 이 '내어 놓기'다. 뭔가를 채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무엇이라도 내어 놓으려 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내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한한 흰 여백을 채우고도 남을 것들.

때로 나는 그것들의 출몰에 오히려 당황할 정도고, 글쓰기의 속도를 오히려 좀 낮추려 노력할 때도 있다. 




머리로 깊이 생각하고, 마음으로 다듬어 내놓는 글.

나는 일전에 이러한 과정을 두고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라 명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는 지금까지 말한 대로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을 때 가능하다.


결국, 글쓰기가 주는 압박은 나를 겁먹게 하고 글쓰기를 멈추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서 빨리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흔쾌히 그것들을 내어 놓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그 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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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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