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충성이 아닌, 내가 내게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Hi. 젊음.
오늘 하루는 잘 보냈어? 어땠어?
난 어제 오랜만에 회사 인턴들과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어.
그 속에 많은 고민이 있고 아픔이 있으며 또 희망을 가지고 있더라.
많은 조언,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열심히 하다가 문득 깨달았어.
내 이야기가 그리 많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어차피 입사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뱉는 말은,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는 그들에게 무책임하지 않으면 다행일 거라는.
다른 건 모르겠고 음식 값을 계산하면서 그래도 내 역할은 좀 했다 싶었어.
당장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거라곤, 맛있는 음식 대접하고 그 친구들이 맛있게 먹고 힘내서 각자의 미래를 향해 달려가도록 도와주는 것 정도일지 모르니까.
"주인의식이라는 단어와의 만남"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건 역시나 직장이었던 것 같아.
"여러분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라는 높으신 분들의 연설이나 충고, 조언에서 심심치 않게 듣게 되기 시작했어.
회사 복도를 지나다 땅에 떨어진 휴지조각을 보면 우리는 주워야 할까, 말까?
자, 그것을 주우면 주인의식이 투철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인의식이 없는 걸까?
월급쟁이이다 보니 그런 생각도 하게 되지.
아니, 월급은 이것밖에 안 주고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거지?
그리고 주인처럼 뭐 좀 해보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챌린지와 참견이 들어오는지.
자, 가만 생각해보니 '주인'이란 말이 있다면 나는 '피 주인', 즉 '종'이란 말인가?
결론적으로 '종'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란 그 말인 거지?
아마 우리 젊음들이 가진 '주인의식'이란 말에 드는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그렇게 '주인의식'이란 단어는 내 맘속에 들어오게 되었지.
"내가 정말 주인이라면?"
자, 그럼 정말 내가 주인이라면?
내가 회사의 오너야. 말 그대로 주인인 거지.
사무실 출근해서 직원들을 바라봐.
열심히 전화하는 저 직원은 업무 전화를 하는 걸까? 아니면 애인과 수다를 떠는 걸까?
저기 저 직원은 어제 모니터 전원을 안 끄고 퇴근했던데...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인데...
아니 저 사람은 자기 돈이라면 저렇게 펑펑 쓸까? 돈 아낄지를 몰라. 나가는 월급이 얼만데...
아마 이내 곧,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할 거야.
"여러분, 제발 주인의식을 좀 가집시다...!"
법인세로 충당하는 초대형 세단을 이끌고 씩씩 거리며 이른 시간 집으로 퇴근하고, 뒤에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겠지.
"주인의식 같은 소리하고 있네!"
"대체 주인의식이란 뭘까?
오너부터 말단 직원까지, 정말 한 마음으로 이 직장이 우리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으며 일한다면, 정말 유토피아적인 '주인의식'은 실천될 거야.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인 거고.
그런데 말이야.
'주인의식'이란 정말 뭘까?
정말 마당을 쓸어야 하는 머슴이, 주인인 대감의 재산을 그보다 더 소중히 다루고 지켜, 보다 큰 안녕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주인의식'일까?
어쩌면 '주인의식'이란 주인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닌 뜻이 아니라,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 스스로가 만족할 만큼 , 또는 그 이상으로 잘해야 한다는 뜻 아닐까?
'주인의식'이라는 말에, 어차피 내가 회사 오너도 아니고 월급 받는 주제에 '주인'행세는 해서 뭣해?라는 약간은 삐뚤어진 시각으로 받아들여왔던 건 아닐까?
물론, '주인'들도, 자기들도 실천하지 않는 것들을 아랫사람에게 그 이상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주인의식'을 강요하면서 그 뜻이 변질되어 왔는지도 모르지.
"주인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어느 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가만 생각해보니 '주인의식'은 스스로의 주인인 내게, 내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 있는 의식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
고등학교 시절 '자율학습'이란 말, 아니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하고 싶은 사람만 남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율적으로 말이지... 투덜대던 그때. 어차피 해야 할 공부라면, 그래 자율학습은 집에 가고 안 가고의 자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자율적으로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공부할 때를 떠올리며.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얼마 되지 않은 때였어. 본사에서 보내온 스펙시트를 보며 분노했지.
자세히 보니 눈에 딱 보이는 오타와 실수들. 당장 전화를 걸어 난리를 쳤어.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았어. 불과 몇 달 전까지 나도 본사에 있었고, 또 스펙시트 보냈다가 오타 수정 요청을 받던 그 순간을 말이야.
본사에서는 그저 부속품처럼 일 하다가, 주재원으로 나와서 맡은 사업을 '책임'져야 하다 보니 안 보이던 오타가 보이고, 그냥 넘어가던 것들도 다시 보게 되는 시야가 생기게 된 거야.
반성을 하며 생각했지. 이게 '주인의식' 아닐까?
본사에 있었던 그 시절, 나는 참 '주인의식'이 없었구나.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었고, 끝까지 독하게 챙기지 못했구나.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것들이었는데.
내 일이라면, 매사에 열심히 꼼꼼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었고.
왜 내 능력을,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툴툴대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결론내고 싶어.
그리고는 나도 스스로 실천하고 싶어.
주인의식란.
누구인지도 모르는 주인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닌,
'스스로의 주인인 내가 내게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