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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29. 2020

나는 가끔 아내를 몰래 찍는다.

아내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알려 주기 위해.

서랍 속에 굴러 다니던 휴대폰을 주워 들었다.

충전기가 지금 것과 달라 젠더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왜 그랬을까. 그건 아마도 지난날의 기록이 그 휴대폰에 고스란할 것이란 기대로부터 일 것이다. 반드시 전원을 켜고 말 거라는 오기와 함께.


나 스스로, 나의 과거를 포렌식 하고자 하는 마음. 

사람은 그렇게도 과거에 미련이 많다. 달라질 것 없는 지난날에 시간과 정서를 쏟아붓는 건, 과연 사람만이 가진 미련한 영특함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모두가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지만 결국 디지털 앞에 무릎을 꿇는 건 바로 기록의 힘 때문이다. 해상도가 좀 낮을지언정, 과거의 기록은 너덜너덜하지도 바스러지지도 않는다. 또한 얼마든지 복사하고 이리저리 갖다 붙일 수가 있으니, 아날로그는 왠지 그 앞에서 초라해진다.


마침내 불빛이 들어온 휴대폰 화면.

가장 먼저 확인한 사진첩 속에서, 나는 결혼 전 나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창 데이트를 즐겼던 그때. 누군가 강산의 유통기한이 10년이라 했던가. 그 유통기한을 몇 년 더 넘긴 과거엔 그렇게 풋풋하고 날씬한 두 남녀가 있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두 얼굴.

얼굴의 크기나 원근법을 개의치 않고, 그 작은 화면에 두 얼굴을 가득히 담은 사진이 수두룩했다. 서로 찍어주기 바빴던 그때의 내 휴대폰엔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겨 있었다. 아름답고, 예쁘고, 여렸던. 기억을 지배하는 확실한 기록들.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아내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목소리는 커지고, 여림은 덜 하다. 몸매는 지난날과 같지 않고 이제는 나에게만 집중할 수 없다. 쇼핑을 가더라도 나와 아내 것보다는 아이들 것을 우선하는 모습에서, '여자'보다는 '엄마'의 색이 더 짙어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휴대폰 사진첩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아내의 사진이 거의 없다. 그곳엔 아이들의 사진이나 풍경 또는 음식들의 사진만이 가득하다. 간혹, 좋은 풍경에서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올리면 아이 둘을 남기고 아내는 슬쩍 앵글 밖으로 피신한다. 사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주름이 늘어난, 예전과 같지 않은 모습을 카메라에 그리 많이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므로, 나는 기어이 아내 사진을 남긴다.

파파라치처럼, 멀리서 알게 모르게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이 사진이 정말 자연스럽게 잘 나온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여자로서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한 존재로서의 아름다움이 분명하게 새어 나온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굳이 젊은 날의 그것과 비교할 필요 없다.


아내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알려 주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몰래 아내의 모습을 담으려 한다. 몰래 찍은 사진을 넌지시 보여주면, 아내도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다. 언젠가 이 휴대폰도 잠들겠지만 다시 전원을 켤 때, 매 순간 가장 젊고 아람다웠던 순간이 간직되어 있음을 생각하며 웃음 지을 것이다.




남들과, 젊은 날의 나와 비교하지 말아야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지. 그럴 때, 삶은 더 아름답다는 걸 인정해야지...라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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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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