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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7. 2020

자연스럽다는 것

그 나이와 역할을 수용할 때, 삶은 좀 더 자연스러워진다.

요즘은 때아닌 사색에 잠긴다.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여서일까. 아마도 이건, 그 어떤 속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농구를 하다 다리를 삐끗해 찾아간 병원에서, 이제는 이런 운동할 때가 아니니 걷기나 골프를 추천한다.

빠르고 격렬한 운동보다, 느리고 완만한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나에게 이것은 비단 운동에 국한된 조언이 아니었다. 격렬함 끝에 오는 땀범벅의 희열을 만끽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서글픔은 있지만,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라는 이야기로 들려왔다. 사람은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저마다의 상황에 맞추어.


그러니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빠르고 격렬한 움직임은 오로지 목표만을 위해서다.

지금까지의 삶이 과연 그랬다. 무언가를 쟁취하고, 남들보다 나아야 하고, 행복은 모르겠고 불행은 피하고 보자는 삶의 공식과 방식에 나는 절여 있었다.


그래서 걷기 시작한 주위엔 사색할 것들이 가득했다.

속도를 내었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들에 대해.


내천의 물이 흐르는데, 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

흐르는 것엔 치유 능력이 있음을 생각해 내었고, 흐른 물이 모여 큰 강과 바다를 이룰 때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습도 상기했다.

내 안의 물은 어디로 흐르는가. 그리고 그 크기는 얼마만 한가. 억지로 흐르는 방향을 틀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거나, 크기에 있어선 아직도 많은 것들을 담아내지 못하는 옹졸한 웅덩이는 아닐는지.


스치는 바람에도 나는 반응한다.

지금 이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앞으로 나아가며 만들어내는 것일까. 저기 물풀을 흔들어 놓는 건 바람인 건가, 무릇 흔들리는 그 모습이 나와 같다는 생각에 걷는 중간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속도를 줄이니 '자연'이 보였다.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현상. 자연스러움은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의 속성이자 원형이다. 그것을 거스르자니 삶은 고단 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이미 자연스러움을 거스르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와는 손잡고, 다른 이와는 대립각을 이뤄야 하는 삶.

인공적인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우리 삶.


도인이 아닌 이상 우리는 마냥 자연스럽게만 살 순 없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건 또 다른 숨을 쉬기 위한 삶의 과제다.


어쩌면 너와 나의 갈등도 자연스러움 그 자체일 수 있다.

거스르며 사는 인공적인 삶과 삶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결과.


지금 이 나이를 맞이한 나도, 더 이상 그 어떤 후회나 원망을 하지 않아야겠단 생각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지금의 내 나이는 나에게 주어진 정직한 자연의 결과다.


그 나이와 역할을 수용할 때, 삶은 좀 더 자연스러워질 거라고 나는 믿는다.

몸이 이겨내지도 못할 격렬한 농구는 줄여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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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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