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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8. 2020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

결국, 행복한 가족을 보며 웃는 건 바로 나다.

달팽이.
고양이.
거북이.
그리고 사람 둘.


내 지인의 메시지 앱 프로필에 도저히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뭘까. 한참을 생각하다 어느 날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물었다. 그 의미가 대체 뭔지.


"응,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것들."


아, 세상에서 그렇게 명료하고도 확실한 대답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순간, 애초에 내가 왜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까란 자책이 들 정도로.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읽기만 해도 자동재생 지원이 되는 어느 카드사의 광고 삽입곡.


이 노래를 듣고 나는 두 가지를 떠올리며 미소와 (헛) 웃음을 동시에 짓는다.

첫째, 그래, 고맙구나. 정말 힘이 난다!

둘째, 그래, 바로 너희들 때문이었어!!!


어른이 되어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

내 꿈을 접어가며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단,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지금. 먹고사는 고단함은 가족이라는 무게에 비례한다. 앞서 연관 없어 보이던 단어가 먹고사는 이유로 명료해졌듯, 지금 내 삶의 맥락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명해진다.


무게란 이야기가 놔와서 말인데.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0.38배다. 태양계 행성 중에서 내 무게가 가장 가벼울 수 있는 곳.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지구살이가 힘겨워, 어쩌면 인류는 화성 탐사에 그렇게 매진하고 있는 게 아닐까란 가볍고도 진지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 '무게'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사람들. 내가 선택한 삶. 내가 선택한 길. 혼자가 더 편한 건 사실이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얻은 삶의 기쁨과 가치는 카드값으로 환산할 수 없다.


묵직함은 무게를 전제로 한다.

묵직함은 그렇게 삶의 중심을 잡는 '무게추'가 된다. 흔들림은 성장의 조건이지만, 지나친 흔들림은 후회의 온상이다. 중심을 가지고 흔들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그야말로 크다.


가족을 위한 삶이라고 그곳에 '나'가 없는 게 아니다.

자아는 따로 떨어져 혼자 있을 때에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있는 곳'에서 완성된다.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만 무언가를 탓하고 도망치려 하는 순간 삶은 더 혼탁해진다.


내가 선택한 가족.

그 무게. 그 묵직함. 결국, 행복한 가족을 보며 웃는 건 바로 나다.


누구를 위해 산다고 말하지만, 결국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자신의 행복이 먼저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난,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내 이기심 한 숟갈 살며시 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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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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