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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9. 2020

아이들 몰래 고기를 먹으며

부모라는 색깔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집 근처에 몰라봤던 맛집이 있었다.

돼지 특수 부위를 파는 허름한 고깃집이었는데, 신선한 고기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연탄불이 그 인기 비결. 어느 주말 저녁, 가족과 함께 그 식당을 찾았다.


윤기가 흐르는 고기는 대파와 버무려져 있었고, 듣도 보도 못했던 부위는 미각의 호기심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연탄불이 앉혀지고 나서는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을 정도로 자란 아이들이지만, 아직은 고기를 온전히 구워 먹을 정도는 아닌 때.


게다가, 연탄불 위에 얹힌 석쇠는 고기 기름을 거르지 못해 불길이 올라왔고, 잘 익혀 먹어야 하는 돼지고기 특성상 오랜 시간을 구웠는데 겉만 꺼멓게 그을러 졌다.

아이들이 배고픔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눈빛으로 보내는 걸 보고는, 나는 고기 굽는데 더더욱 집중했다. 옆에 있던 아내는 떨어지는 반찬을 담으려 셀프 코너를 오락가락하고, 역시나 아이들 식사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뭔가 맛있었던 기억이 얼핏 나긴 했지만, 뭔지 모를 헛헛함이 몰려왔다.

배가 부른 것도 아니었고, 뭔가를 제대로 씹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잠이 들기 전, 나와 아내는 그 느낌에 맞장구를 쳤다.

"있잖아. 내일 우리 둘만 다시 가서 먹을까?"




다행히 그 의지와 입맛이 다음날까지 유효했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 주고, 이제 막 택배로 도착한 조립식 장난감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잠시 밖에 다녀온다는 말을 전했다. 어디 가냐고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데이트'라는 말을 던지면 잘 알아듣는다. 가끔 엄마 아빠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단 걸, 내가 거듭 말해왔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것에 수긍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굳이 고기 먹으러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식당에 도착해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굽고, 반찬을 가져오는 것은 똑같았지만 그 분주함은 확연히 줄었다. 나와 아내는 고기의 질감을 느끼며 씹었다. 육즙이 신선한 채소와 어우러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을 만들어 냈다.

이내, 기분 좋은 포만감이 몰려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

아내와 나는 이 일을 아이들에게 비밀로 부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물어보면 알려 주고,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말자고 생각을 같이 했다. 그러나 역시, 마음 한 편이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미 우리 손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맛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쥐고 있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편하지 않은 마음이 '부모 마음인가 보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비행기가 비상 상황에 닥치면 산소 공급기가 내려온다.

그리고 그 매뉴얼엔 '어른부터'쓰라고 되어있다. 어른이 써야 아이를 구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하니 죄책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와 아내를 챙기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결국, 모든 건 아이들에게로 귀결이 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보호자라는 역할로. 남자와 여자로 만났지만 이제는 그 색깔보다 더 진해져 버린 부모라는 색깔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러함으로 더 다채로워진 삶의 색깔은 내가 알지 못했던 삶의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두 손 가득 들린 맛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즐겁게 먹을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나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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