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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2. 2020

지압길을 걸으며

나는 그렇게 그 시원함을 바라보며 걷기로 한다.

나는 지압길 걷는 걸 좋아한다.

온몸의 피로가 발과 종아리로 오는 느낌이어서인지, 올기돌기 올라온 돌 길을 맨발로 걸으면 다리부터 머리까지 개운한 느낌이 올라온다. 다른 이들 중 대부분은 그 아픈걸 어떻게 하느냐며 함께 하자는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한다.


그러나 나도 마냥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아프면서도 참고 걸으면, 무언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어 그것에 기대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지압길을 걷는 것이 우리네 삶과 그 삶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시원하면서도 때론 아픈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며 나는 피식했다.


내가 지압길에 한 걸음 내딛을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돌부리를 고를 수 없다. 설령, 내가 발 내딛을 곳을 정하여 발을 대더라도 그 돌들이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해야 할 사람들과 같다. 내 입맛에 맞게 고를 수도 없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직접 겪어 봐야 안다.


그중 어떤 돌은 나에게 고통이다.

아무리 지압길을 좋아한다고 한들,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아프게 발 밑을 찌르는 돌이 있다. 또 어떤 돌은 발바닥 뼈를 비스듬하게 비껴 눌러 이제껏 느껴 보지 못한 아픔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중엔 나에게 분명 고통을 주는 이들이 있으니, 과연 얼굴을 찡그리게 하고 순간 울화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그러나, 지압길의 끝에서 결국 내가 시원함을 얻게 된 이유는 나에게 고통을 준 돌들 때문이다.

완만한 돌이었다면, 그래서 아무런 고통 없이 평탄하게 걸었다면. 그건 지압길이 아닐 것이다. 시원함을 느끼면서도, 걷는 걸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의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는데 그 과정의 결과는 결국 시원함으로 귀결된다. 묵직한 다리가 이내 가벼워지고, 소화까지 가볍게 되고 나면 나는 과연 이 고통을 받아들인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것이다.


매끈매끈한 돌이 나에게 상상도 못 한 아픔을 주기도 하고, 뾰족해 보여 위험한 돌이 내게 둘도 없는 시원함을 주기도 하는 걸 보면.

역시 쉬이 누구를 재단하거나, 내편 네 편을 나누지 말아야겠단 생각이다.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단 걸 지압길 위에 있는 돌들과, 그것을 느끼는 내 발이 톡톡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발을 내디뎠다면, 올라오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시원함과 고통 속에 다음 걸음을 준비해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결과의 끝은 시원함일 테니, 나는 그렇게 그 시원함을 바라보며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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