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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6. 2020

채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글쓰기가 시작된다.

사람은 무조건 채우려는 습성이 있다


긴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을 듯하다. 

출처: 카니자의 삼각형

다음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분명, 그 어디에도 역삼각형은 없지만 사람이라면 기어이 역삼각형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없는 삼각형도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는, 인지적 착시로 설명될 수 있다.

사람은 불완전한 요소를 완전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맥락적 사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든 설명해내려는 것으로 오늘 나에게 일어난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렇다.


19세기 심리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홀츠' 또한 이러한 착시를 '무의식적 추론'에 따른 인지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형태주의 심리학자들도 '전체적인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려는 사람의 경향'으로 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종합해보면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채우려는 본능이 있고, 이는 불편한 마음을 회피하고 싶음과 동시에 무언가를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이 있다!"


채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글쓰기가 시작된다!


글쓰기 앞에서도 사람의 본능은 작동한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이어가질 못한다. 왜 그럴까. 채우려는 마음 때문이다. 욕심과 갈망, 집착과 미련은 그 마음에 한 가득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수 십 년을 살고 나서야 글쓰기를 시작한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나는 글쓰기를 늦게 시작했는데, 글쓰기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날들을 돌아보면 나는 글쓰기를 '채우는 것'으로 생각했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채우려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첫째, 흰 여백을 채우려는 마음


흰 여백.

깜빡거리는 커서. 이보다 공포스러운 것이 있을까. 글쓰기를 결심하고 맞이하는 가장 두려운 대상이 바로 이 두 가지다. 무엇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글은 어느 정도 길게 써야 한다는 강박과, 어떻게든 빨리 이 여백을 채워야겠다는 조급함이 어우러져 결국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둘째, 한 번에 잘 써야 한다는 마음


글쓰기의 시작에서, 완벽하려는 사람의 욕심은 '필력'을 쥐어짜려 한다.

아직 글쓰기에 익숙지 않으면 필력은 부족함이 온당하다. 천부적 재능으로 쓰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한데, 글을 쓰려 모니터 앞에 앉으면 있지도 않은 필력을 발휘하려 한다. 한 번에, 풍부한 표현력으로 앞뒤를 완벽하게 꿰어 맞추려는 마음 앞에 글쓰기는 무너진다.


셋째, 대단한 걸 써야 한다는 마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가장 큰 또 하나의 적은 '특별한 걸 써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시대인데 시대를 역행하려는 것일까. '나'를 소외시키고, 내 일상을 경시하면 글의 소재는 생기지 않는다. 어쩌다 생긴 특별한 이벤트만을 글로 옮기다 보면, 소재를 소비하는데 익숙해지고 소재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실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넷째, 책을 내야 한다는 마음


모든 글이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책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써 놓은 글은 없는데, 책은 내고 싶어'란 정서가 가득하다. 인정받고 싶다는,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글을 쓰지 않고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은 채워질 수 없는 마음이다.


다섯째, 빨리 써야 한다는 마음


한국인이라면 갖고 있는 조급증.

'글쓰기'와 '걷기'는 공통점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속도'에 있다. 이 둘은 '속도'에 역행해야 가능한 것들이고, 그래야 효과가 크다. 그 속도에 동의를 하지 못한다면, 뛰거나 누가 쓴 글을 복사해 갖다 붙이면 된다. 결국, 글쓰기는 빨리 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차근차근 자신을 돌아보며 써 내려가야 하는 인고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얻는 보물과 같은 깨달음과 통찰은 그 어떤 값어치로도 대체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글쓰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 놓는 것이다.

흰 여백을 다 채우지 않더라도, 한 번에 완벽하게 써 내려가지 않더라도, 그저 나에 대해 쓰고 결국 내 이야기가 특별한 이야기임을 깨닫고, 글이 책이 되는 것이라는 인내와 함께 완만한 속도로 써 내려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이자 '나를 내어 놓는 글'이다.

비로소 써지고, 따라서 이어지는 글쓰기의 시작과 과정을 나는 사랑한다.


P.S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채우려 허둥대지 않도록, 그러했던 나의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 분이라도 더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쓰기 강의를 지속하는 이유.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을 이어가야겠다고 다시 한번 더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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