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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7. 2020

얼이 깃드는 굴

지금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얼'은 '정신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을 말한다.

'민족의 얼'이나 '겨레의 얼'부터 '얼빠진 사람', '얼간이'라는 말까지. '얼'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굴'은 '구멍' 또는 '통로'를 의미한다.

얼굴에 가장 많은 구멍이 몰려있고,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얼굴 쪽을 향해 어떤 손동작을 보이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보니, 어쩐지 '얼굴'의 무게가 상당하게 다가온다.

그저 잘생겼는지, 예쁜지, 큰 지, 작은 지만을 재단하던 나의 생각과 관념이 못내 초라하다.


'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얼'이 통로를 통해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일부분이나마 읽어낼 수 있다. '표정'을 통해서다. 표정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루 중 언젠가 거울 앞에 서게 된다면, 우리의 '얼'을 얼핏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즐거우면 그 '얼'은 밝고, 내가 슬프면 그 '얼'은 어둡다.

그 명암의 결과가 내 '표정'이 될 것이다. 얼굴엔 굴곡이 있고, 그 굴곡은 음영을 만들어 낸다. 삶이 그렇다. 높낮이가 있고, 밝고 어두움이 있다.


얼굴은 삶을 닮았다.

삶은 얼굴을 닮았다.

그렇게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 곧 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를 돌이켜 보건대 가장 적게 보는 얼굴이 바로 내 얼굴이다.

직장에선 동료의 얼굴을, 집에선 가족의 얼굴을 더 많이, 더 오래 본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얼'과 '굴'을 살핀다. 표정과 기분, 행동을 통해 그것들을 미루어보건대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가장 적게 보는 것이 내 얼굴이므로, 나는 남보다도 나 자신을 모를 때가 더 많다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글을 쓰던 이 순간, 나는 나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느껴본다.


글쓰기에 집중하느라, 내 얼굴 하나 제대로 잘 바라봐주지 못했단 자책을 하느라 미간은 찡그려져 있고 입은 고집스럽게 다물어져 있다. 이내, 눈을 크게 뜨고 입꼬리를 올려 본다. 


얼굴이 조금은 펴지는 느낌이다.

펴진 얼굴이 나를 조금은 위로한다.


'얼'이 깃드는 '굴'을 좀 더 자주 살펴야겠다.

외모를 떠나, 표정을 떠나, 기분을 떠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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