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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4. 2020

서툰 것들을 위한 시

서툴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때가 아니다.

설익은 밥은 딱딱하다.

찰지지 못해 따로 놀고, 따로 놀아 뭉치지 않는다. 뭉쳐지지 않는 밥알들은 안쓰럽다. 안쓰러운 마음은 그것들의 서툶으로부터다. 하나하나의 작은 알들이 발버둥을 쳐 찰져보려 하지만 뜸이 들지 않은, 그러니까 성숙하지 못한 알들은 기어이 따로 놀고 만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내 삶의 어느 서툰 순간들은 그와 같았다.

설익은 밥처럼, 딱딱하고 찰지지 않으며 뭉쳐지지 않았다. 긴장하고, 융통성 없고 조화롭지 못했던 것이다.


잘해보려 하지만 오히려 흐트러지는 일들이 많았고, 뜸이 들지 않아 인정받지 못했던 기억이 허다하다. 

내가 어딘가에 제대로 쓰이지 못한다거나, 실력 발휘를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엄습하는 무기력함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서툴지 아니한 때가 없다.

누구나 서툴고, 그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시작을 자주 잊고 산다. 아마도 시작의 그즈음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서툶의 멍에를 잊고 싶어서겠지. 누구나 서툴지만, 누구도 자신이 그랬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작이란 말은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다.

시작 앞에선 누구나 초보가 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초보가 되는 상황을 멀리 하려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기보단, 왕년을 답습하려는 이유다. 


그러나, 서툴지 않은 삶은 지루하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낯선 곳으로 내모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다. 여행이 대표적인 예다. 낯선 곳에서 기꺼이 서툰 존재가 되고, 새로운 것들을 하나하나 새롭게 경험해 나간다. 사랑도 그렇다. 누구와 사랑을 하더라도, 그 시작은 언제나 서툴다. 때론, 격렬한 키스보다 어찌할 줄 몰라 서성이는 입술이 더 애틋한 법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서툰 것들'이다.

이번 생은 다들 처음 아닌가. 덜 서툰 척을 하고 살고 있을 뿐. 너나 나나 서툰 건 마찬가지고, 서툴 수밖에 없다.


처음 밥을 안쳤던 그때.

내가 지은 밥은 설익어 있었다. 나는 그 맛과 감촉, 그리고 향을 정확히 기억한다. 맛있진 않았지만, 더 나은 밥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물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잣대가 되었다.


설익은 밥을 되돌릴 순 없었지만, 밥을 짓는 내 실력은 늘었다.

지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서툴었던 과거의 나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서툴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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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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