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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9. 2020

맑지 않은 정신에 글쓰기

글쓰기는 정신을 맑게 하는 과정이다.

맑은 정신에
뭘 해야겠다는 마음


우리는 맑은 정신에 무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직장인이라면 좀 더 그렇다. 비몽사몽 간에도 출근길에 기어이 한 손에 쥐어드는 아메리카노를 보면 알 수 있다. 커피 한 잔 먹고 정신 차리자는 각성이자, 거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실천의 발로. 심리학으로 풀면 이것은 맥락 바꾸기다. 시작점에 다시 서기 위한, 맑은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상황을 변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맑은 정신이 된다고 해서 무얼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삶에 있어 맑은 정신을 가지게 되는 때도 거의 없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큰 착각이다. 


어떠한 조건이 이루어졌을 때 무언가를 하겠다는 다짐부터가 어쩌면 맑지 않은 생각일 수 있다.


맑은 정신에 써야겠다는 마음


맑은 정신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글쓰기' 앞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가다듬어 다소곳이 앉아야 한다는 또 다른 편견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큰 결심을 하고, 노트북의 전원을 장엄하게 누르고, 자판을 가지런히 놓아 글쓰기를 위해 책상 앞에 앉은 적이 있을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나마 맑은 정신으로 시작하려던 그때. 그래서 글이 잘 써졌는지 묻고 싶다. 물론, 그 결과는 반반이던가 아니면 글이 잘 써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수지청즉무어
水至淸即無魚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


글 쓰는 마음은 소란해야 한다.
직장인의 마음은 소란하다.


하얀 옷을 입으면 그 날 하루가 불안하다.

말 그대로 '하얀 옷'은 깨끗함과 맑음의 표상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날 점심 메뉴는 김치찌개나 부대찌개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조심하며 앞치마를 덧대 보아도, 결국 흔적은 남는다. 


사람이란 생각보다 여리고 간사해서 99.99% 하얀색 위에 찍한 0.01%에 마음이 쓰인다.

그 0.01% 때문에 그 날 하얀 옷을 입은 자신과, 밥 먹을 때 조금 더 조심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이 순간, 슬퍼하기만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마음은 소란해졌고, 이제 글 쓸 소재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기반성과 상황, 에피소드.

그것들을 겪으며 생긴 감정과 깨달음.


한 자, 한 자 풀어 나가면 된다.

조금은 탁한 물속에서 소재라는 월척을 낚아내면 되는 것이다.


글쓰기는 정신 맑을 때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정신을 맑게 하는 과정이다.


돌아보면 나의 글들도 맑은 정신이 아니라, 소란한 마음으로부터였다.

롤러코스터와 같이 오르내리는 감정,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과의 갈등.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지,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벗고 나면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댔다.


온갖 잡다한 마음과 불안,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토록 나를 소란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삶의 묘미는 역설에 있듯이 그 소란함 들을 잠재우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많은 직장인들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글을 쓰고 싶어 졌다는 건 내 마음이 소란하다는 방증이고, 이제는 글을 쓸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맑은 정신에 글 쓸 생각보다는, 글을 쓰며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좋다.

완벽한 준비를 하고 글을 쓰려하기보다는, 쓰면서 생각하는 게 좋다. 실제로, 서론 본론 결론을 구성하여 시작한 글보다, 제목 하나를 툭 던져 소란스러운 감정들을 정리하며 써 내려간 글들이 훨씬 많고 좀 더 읽어줄 만하다.


직장인의 마음은 언제나 소란하다.

소란한 마음은 돌아봐줘야 한다.

돌아봐주는 데는 글쓰기가 최고다.


무엇을 쓸 것인가.

나에게도 쓸 것이 있을까.


답은 소란한 내 마음 안에 있다.

이제는 그것을 끄집어낼 시간이다.


직장인에게 글쓰기는 그토록 소중한 의식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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