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고독이 슬며시 그 방의 문을 닫는다.
나는 가끔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애쓴다는 말은 그게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는단 말이다. 세상에서 내가 나를 아는 것이 가장 쉬워야 하는데, 어째 그게 가장 어렵다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이자 묘미가 아닐까 한다. 그래, 사람은 어차피 이렇게 생겨먹었고 나만 그러한 게 아니니 억울함은 잠시 내려놓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방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크기는 잘 모르겠다. 어떤 날은 크고, 또 어떤 날은 작다. 다른 날은 여러 개이고, 또 다른 날은 달랑 하나다. 방이 크고 많다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작고 하나라고 안타깝지도 않다. 마음의 방은 그렇게 크기와 개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연연하는 건 내 욕심과 기분일 뿐.
마음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 그 이하면서도 이상이다.
방 한가운데 누군가 있다.
'나'다. 방 한가운데 있다고 해서 그 방의 주인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 그럼 그 방은 자가일까 전세일까 월세일까. 내 삶의 무엇으로 나는 그 방에 머무르고 있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숨만 쉬어도 뭔가를 지불해야 하는 세상. 그게 무엇이든, 치환하여 방 값을 지불하는 그 과정과 값어치는 꽤 무겁고 묵직하다.
나는 방 한가운데 고독하다.
삶은 어차피 '선택' 아니면 '받아들임' 두 가지일 텐데, 그렇다면 나는 그 '고독'을 선택한 것일까, 받아들인 것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선택한다는 건 내가 사람들을 떠나온 것이고, 받아들인다는 건 사람들이 나를 떠난 것이다.
나는 언제나 경계의 면에 서있으려 노력한다. 어느 한쪽으로 쏠릴 때 삶은 가엾다. 그러니까 '고독'은 선택하거나 받아들이는 것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내 마음속 방 한가운데.
그곳이 바로 '고독'의 스윗스팟이다.
재밌는 건, 내 마음의 방이 누군가로 꽉 찰 때가 있다는 것이다.
수두룩한 존재들은 나의 복수일 수도 있고, 또는 내가 소환한 상념이나 그리움을 머금은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해서 들이거나, 이별했는데 놓아주지 못하는 사람. 사물. 추억. 감정. 기분.
과연, 내 마음의 방엔 누가, 무엇이 있는 걸까.
내 마음엔 방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아... 내 마음이란 건 뭘까?
또다시, 그 방 안에서 나는 한가운데 앉아있고.
내가 선택한 고독이 슬며시 그 방의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