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핸들을 조금이라도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
'행운'과 '불운'.
이 두 말 중에 어떤 걸 좋아하냐고 묻고 싶다.
100명 중 99명이 '행운'을 택할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은 질문이 너무 당연해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거나.
그런데 재밌는 건, 그 두 단어엔 '운(運)'이란 한 글자가 공통으로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힘을 초월한 천운과 기수' 또는 '일이 좋게 이루어지는 운수'를 일컫는 말. 이 뜻엔 '자의'보단 그것을 초월한 어떤 힘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운'의 대부분을 하늘이나 다른 어떤 곳에 맡긴다. 이 이야기인즉슨,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왕이면 마음대로 안 되는 결과가 '행운'으로 오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하고 또 간절히 바란다.
물론,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의 대부분은 '행운'보다는 '불운'인 경우가 많다. 내가 어찌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잘못 산 것도 아닌데 다가오는 수많은 '불운'들은 삶을 무기력하게 한다. 아니, 그것을 넘어 스스로를 갉아먹게 할 정도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다.
세상 탓을 하고 남 탓을 하며 그 '불운'은 외부로부터 온 것이라 항변하지만, 떼를 쓰는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다 제풀에 꺾이듯 나는 결국 스스로를 바라본다. 나의 욕심과 탐욕, 조급한 마음과 사심이 결국 그 '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
하나 더 놀랍고도 흥미로운 걸 알게 되었다.
'운'자가 '운전'할 때의 그 '운'자와 같다는 것. 이제껏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행운'을 그렇게 바라면서도 그 뜻하나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니.
그렇다면, '운'엔 핸들이 달려 있지 않을까.
지금까진 목적지 모를 오토파일럿이 그것을 알아서 움직이게 했다면, 이젠 내가 그 핸들을 잡아 보는 건 어떨까.
오토 파일럿이 편하지만 운전의 재미는 없다. 내 목숨을 누군가에 맡긴 느낌이다. 결국, 사고가 나도 내 책임이다. 어차피 책임을 질 거면, 운전의 재미를 느끼며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핸들을 조금이라도 돌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 끝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내가 잡음으로써 내가 원하는 '운'들을 더 잘 맞이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 '운'의 오르락 내리락이 나에겐 '행운'이자 '불운'일 텐데, 그렇다고 그 둘이 좋고 나쁜 것으로 이분화되지 않길 바란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것들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짐을 많이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운'의 핸들을 내가 쥐고 있을 때 더 가치가 있다고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읊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