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시작은 참으로 별 것 아니다.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그의 우상 마틴 스콜세지 앞에서 이 말을 했을 때, 난 전율했다.
마침, 글쓰기 강의 교안을 만들 때였는데, 보통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글로 써낼 수 있다는 걸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던 때였다.
'페르소나로 글쓰기'란 말은 생각해 놓았지만 이는 기법에 대한 표현이었으므로, 나 또한 보통사람이고 내 이야기를 글로 써 다수의 책을 출간했으므로 위와 같은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먼저 저 말을 만들어냈으면 어떨까 욕심을 내보지만 그보다는 마틴 스콜세지로부터 이어져 봉준호 감독이 말을 했어야 어찌 되었건 내 강의의 신뢰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데에 나는 만족하기로 한다.
When people ask me if I went to film school I tell them, 'no, I went to films.'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글쓰기와 전혀 관련 없던 내가 무작정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큰 영감을 준 감독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앞뒤가 맞지 않고, 맥락 없는 폭력과 쓸 데 없는 대사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처음엔 기피 대상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의 영화가 어쩌면 사람에 대해 가장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의도된 B급은 저급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고급진 역설이라는 걸 알고는 그의 영화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캘리포니아 맨해튼 비치에 있는 비디오테이프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며 영화를 꿈꾸고 실행에 옮겼다는 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를 보면 그의 '무근본'과 그로 인해 발산되는 '용기'를 볼 수 있다.
각 배우의 대사는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말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고, 심지어는 주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영화 촬영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카메라 앵글에 잡힐 정도다. 어디서부터가 의도된 것이고, 어디까지가 의도되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정말 큰 영감을 안겨 주었다. 우리 삶은 연극이나 영화와 같다고 말하지만 맥락에 맞지 않는 정말 허무하거나 의미 없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고, 때론 내가 주인공이 되고 또 누군가의 인생에 조연이나 구경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는가.
영화를 배웠냐고 묻는 말에, '나는 영화를 봤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을 글쓰기 앞에 주저하는 나에게 여러 번 대입하곤 했다.
나의 이야기를, 나는 그저 썼다.
나는 (지금도) 직장인이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책을 여러 권 냈다.
심지어 작년에는 한 해에 세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모두 출판사에서 먼저 제의를 준 '정식 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나는 책 이상의 무수한 글을 써냈다.
어떻게 글을 그렇게 많이 쓸 수 있냐는 질문, 어디서 글쓰기를 배웠느냐는 질문,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나는 결국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말을 합쳐 대답한다.
실제로 그렇다.
주재원이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겠다고 써내려 간 글. 직장인으로서 젊은 날의 나와 후배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써 내려간 깨달음과 의미. 직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찾아가는 여정과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아빠의 인문학 편지 등. 그 모든 글은 나에게서 시작되었고, 나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자아를 담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분들에게 '나'의 이야기도 글이 되고, 팔리는 시대가 되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글과 책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누군가의 글이나 책을 보고 이런 것도 책이 되어 나온다거나, 내가 써도 이것보다 잘 쓰겠다고 생각하는 오만은 버린 지 오래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를 세상에 내어 실천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정말 나다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나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는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기쁘고 고통스럽게, 따분하고 지치게 만드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 나는 기어이 개인적 일 수 있고 그저 그랬던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 나갈 수가 있다. (우리는 그저 무기력하게만 있을 뿐,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잘 묻지 않는다. 묻지 않으니 대답이 나올 리가 없고.)
지금 이 글을 읽었다면, 단 몇 줄이라도 나의 것을 내어 보는 것이 어떨까.
'글쓰기'의 시작은 참으로 별 것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