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으면 행복도, 불행도 없다는 걸.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삶의 목적이 아님을 잘 안다.
행복하려고만 할 때 운명의 시소는 한 없이 기운다.
기울어진 그 끝엔 더 이상 행복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손에 잡힐 듯 안간힘을 뻗어 당도한 그곳.
그곳엔 '존재'가 있다.
살아 숨 쉬는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모호하다.
그러나 이 명제가 유효한 것은 그 어떤 말보다 덜 모호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수시로 저의 존재를 살펴야 한다.
한 시도 멈추지 않고 숨을 쉬는 이유다.
삶에 있어 몇 안 되는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나서는 이유다.
사랑이란 것 또한, 누군가에 대한 헌신이 아닌 스스로의 행복을 위함이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이고, 가장 이타적인 것이 가장 이기적이다.
즉, 사람은 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시리도록 이기적이다.
지금 잠시 내 숨을 느껴보자.
그 숨 안엔 무엇이 있는가.
아, 숨을 쉬고 있다는 건 알고나 있었는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숨의 횟수 중 내가 기억하는 것은 과연 몇 번일까?
온갖 자극을 들이대야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삶은 허망하다.
그 어떤 자극이 없어도 나는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으면 행복도, 불행도 없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잊고 산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이나 불행을 맞이 했을 때 돌이켜야 하는 건.
마음의 기쁨과 슬픔, 감정의 고저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