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선’을 지킬 때 서로 지켜 즐거운 ‘선(善)’이 됩니다.
스테르담 직장인 심리카페 의뢰 내용을 정리하여 연재합니다.
Q. 무례하게 행동하는 동료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정말 어찌해야 할까요?
너무 무례하게 행동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지적하면 싸움이 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동료가 저에게 너무 예의 없는 언행을 보이는데 기분이 나빠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방법이 있을까요?
A.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그 사람은 상사일 수도, 동료일 수도, 후배일 수도 있죠.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런 사람이 없는 직장생활은 없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바로 자꾸 ‘선’을 넘어온다는 것입니다.
선은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는 영역입니다.
질문자님께서도 ‘내 영역을 침범당했다’라는 마음의 불편함을 분명 느끼셨을 겁니다.
저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저의 한 동료는 아무 말 없이 제 책상 위의 물품을 자기 것처럼 가져다 쓰곤 했습니다.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는커녕, 때로는 제 서랍을 자연스럽게 여닫는 것까지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뭐라고 하자니, 내가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이야기하지 않자니 뭔가 제 영역을 침범당했다는 울분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직설 화법’이었습니다. 그러한 무례함을 멈추게 하는 것이, 제 마음의 불편이 지속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다음부턴 내 동의를 구하고 물건을 써달라, 서랍은 개인의 영역이니 함부로 열지 않았으면 좋겠다. 놀라운 건, 그 동료가 바로 수긍을 했다는 겁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며 사과까지 했습니다.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행동이나 상처를 주는 말투 등.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하여, 그러한 행동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화’시켜주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저처럼 ‘직설화법’으로 말하거나, 아니면 ‘미러링’을 통해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둘째는 만들고 있는 거야?”라는 민감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묻는다면, “너무 민감한 질문이라 지금 대답하긴 적절치 않네.”라고 하거나, “너는 둘째 낳을 때 기분이 어땠니?”, “둘째 어떻게 바로 만들었어?”등으로 인지화를 시켜 주는 겁니다.
또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을 보여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서로의 ‘선’을 지킬 때, ‘선’은 날카로운 경계가 아니라 서로 지켜 즐거운 ‘선(善)’이 되는 것이라고.
[종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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