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상대가 나로 하여금 기어이 편지를 쓰게 한다. 그러고 보니 군대에서 펜을 잡는 게 영 어색했던 덩치 크고 주먹깨나 썼던 사람들도 가냘픈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 자신들이 사랑하던 그 상대에게 말이다. 아마도 그 상대가 그립거나 보고팠을 것이다.
편지는 보내는 일도, 받는 일도 특별한 일이다.
더더군다나 요즘과 같은 시대엔 편지를 쓸 일도, 받을 일도 별로 없으니 더 그러하다. 예전엔 그 어떤 상대가 편지를 쓰게 만들었는데, 편지를 쓸 일이 별로 없는 요즘은 그 어떤 상대가 소멸되는 느낌이다. 편지 말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로부터 우리는 효율을 얻었고, 상대를 잃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새가 없다.
당장 텍스트를 보내거나 전화하면 된다. 오히려 바로 연락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가 더 큰 사람 간의 간격을 만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먹을 것이 넘쳐나 배고플 새가 없는 것처럼. 많이 먹어 영양소가 과다하게 섭취 되고 있는 것처럼. 넘쳐나는 인스턴트 연락들이 그리움에 적잖이 독이 된다.
편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편지의 대상엔 '나'도 포함됨을 깨닫는다.
더불어, 꼭 선이 그어진 종이 위에 펜으로 꾹꾹 눌러써야 하는 것만이 편지일까를 되묻는다.
오늘 복권 당첨이 된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전에 복권을 샀다는 것이다.
복권을 산 그 순간.
그 사람은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게 아닐까?
나는 살면서 과거의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많이 받는다.
어디로 부쳐진 건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나에게 답장이 오고 만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맞이한 모든 순간은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누가 답장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보낸 편지에 대한 모든 답장이 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맞이한 오늘은 분명 과거의 내가 보낸 편지와 연관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