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려면, 그 이상의 애를 써야 한다.
애쓰는 사이
이 세상 가장 편한 사이가 뭘까.
나는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 말하고 싶다. 더 주지 않아도, 더 받지 않아도.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사이. 그런 사이 말이다.
'애'는 창자나 간, 쓸개의 옛말인데 이것이 확장되어 오장육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속'이란 말을 떠올려도 좋다. '애타다', '애쓰다', '애먹다'를 떠올려보면 '속이 끓는다'란 말도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다.
문득, 연애할 때를 돌아본다.
인생에서 필요한 애란 애는 모두 끌어다 썼던 기억이 난다. 오장육부가 꼬이도록 괴롭던 순간, 속이 화하게 편해지고 날아갈 것만 같았던 시간들. 사랑하는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들인 '애'와 '공'을 쌓으면 대기권을 벗어나 어느 우주 하나의 별에 가닿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돈도 이와 같다.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연애 때 쌓아 올린 '애'아 '공'의 탑보다 더 높아야 할 것이다. 생존의 가치는 번식의 가치를 포괄하기 때문이다.
애쓰는 이유
돈을 벌기 위한 애쓰기는 고귀하면서도 처절하다.
경제논리와 자본주의 원리 안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그랬다.
그저 지나가는 간판 아래 상점 속 사람들이 새로이 보였다. 분주하고 바쁘게 배달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들, 뒷칸에 무언가를 잔뜩 싣고 내달리는 트럭들. 상사의 호통에도 마음속 가족을 생각하며 부들 거리는 손을 진정시키는 직장인까지. 우리 모두는 그토록 이익을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애를 쓰는 이유를 한 단계 더 들어가 봐야 한다.
'이익'은 '손해'의 반대다. 즉, '이익'을 얻겠다는 건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말인데 사람은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고통이 더 큰 '손실 회피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손실 회피 심리'가 더 심해지고 있다. '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이를 잘 말해준다. 원뜻은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말하며 최근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활황으로 '나만 소외될 것 같은' 심리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벼락거지'와 같은 상대적 박탈감을 함께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 보면 된다.
여기에, 날로 불안정해지는 고용 상황과 건물이 없으면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이토록 우리를 돈에 대해 애쓰게 만드는 것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고 싶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다.
그러나 나는 결혼은 또 다른 연애의 시작이라고도 말한다.
오장육부를 들었다 놨다 애쓰던 연애는 결혼이라는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확실히 연애 때보단 덜 애쓴다. 안정이 찾아온 것이다. 더 이상 다른 설레는 사랑을 찾기 위해 속을 끓이지 않아도 된다. 이 좋은 사이를 유지하며 평생을 살면 된다. 그러나 이 또한 거저 온 것이 아니다. 요동에 요동을 거치고, 서로의 모난 부분을 깎고 다듬어 서로에게 가장 필요하고 편안한 그야말로 인생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애쓰지 않거나 덜 애쓴다는 건 더 큰 믿음과 배려에 기반한다.
애쓰던 그 에너지를 믿음과 배려에 더 투자한다는 개념이다. 덜 애쓴다 하여 상대를 가벼이 여기거나 그 소중함을 줄이겠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편안함에 감사해하며 더 돈독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돈과도 그러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돈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나보다 더 쉽고 빠르게 돈을 버는 사람들을 보며 애태웠던 날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내가 태웠던 애는 돈을 향한 게 아니라 돈 주위에서 벌어진 것들이었다. 연애를 하려면 연애의 대상을 바라봐야 하는데, 나는 자꾸 한 눈을 팔고 딴짓을 한 것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한 사이가 되려면 상대를 잘 이해해야 한다.
깊이 바라보고, 깊이 공부하고. 믿고 배려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투덜대거나, 나보다 연애 잘하는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면 남는 게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 나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만 돈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려면, 그 이상의 애를 써야 한다.
나는 돈에 대해 지금까지 그러하지 못했다. 실천하지 않는 귀찮고 게으름이, 더 알려고 하지 않았던 무지가 지금의 후회를 낳았고 경제적 자유의 순간을 더 뒤로 미루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이미 늦은 것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경쟁하고, 오늘의 나를 극복하고, 내일의 나를 배워나가려 한다면 희망이 있을 거라 믿는다.
돈에 대한 생각과 마음가짐을 바꾸고 글을 써나가는 나의 '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스스로도 사뭇 진지하고 기대가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