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있고, 해내고 있다.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산더미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그 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그 둘은, 생각보다 자주 뒤바뀐다. 어찌 되었건 내 삶에 도움되는 일들이다.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건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억지로 하든, 열정을 갖고 하는 일이든 무언가에 도전하고 해낸다는 성취감은 그 산더미와 비례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것들을 허투루 대할 수가 없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그 산더미에 자주 압도당한다.
그 산더미를 올려다보는 것조차 벅찰 때가 많다. 쓰고 싶은 글, 써내야 하는 글. 읽지는 않는데 높이 쌓여만가는 책들, 해야지 해야지 하며 미루고 있던 개인 브랜딩 콘텐츠 제작은 물론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강생 분들 피드백까지. 아차, MBA 과제는 내일까지이고 운동도 하기로 했는데... 란 한숨과 함께 내일 회사에서 해야 할 중요 보고가 떠오른다.
그쯤 되면 나는 말 그대로 '그로기(groggy)' 상태가 되곤 한다.
작심일일도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과
억지로 만들어낸 일상 루틴
그래서 내가 예전에 택했던 방법은 바로 '일상 루틴'만들기였다.
하루 1시간은 글쓰기, 하루 2시간은 독서, 다시 다른 1시간은 콘텐츠 만들기 등. 일상 루틴을 만들기 위해 나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었다. 시간표와 계획표도 그럴싸하게 작성했다. 생산성 툴을 찾아 각 목록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적어 놓고 완료 여부를 체크했다. 어느 정도 반복하면 습관이 생겨날 줄 알았다. 그러면 일상 루틴은 나를 좀 더 생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었다.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자동차에 거는 기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작심삼일은 고사하고 작심일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나가 밀리거나 늦어지면, 뒤 계획들은 줄줄이 수포로 돌아갔다. '완료'라는 체크표시는 생겨나지 않았다. 시간을 쪼개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쪼갠 시간엔 내가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들이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새벽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데,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새벽 시간에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일상 루틴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삶에 스며들 수 없는 것이다.
일상 루틴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고, 더하고, 여기저기 틈만 보이면 욱여넣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해왔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언제나 '의지'의 부족으로 귀결되었고, 결국 손에 남는 건 따끔한 자책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하다가 문득 일상을 달리 보게 되었다.
'잠깐만, 나에겐 이미 일상 루틴이 있었네?'
오호라, 아침잠 많은 내가.
꾸준히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내가. 출근만은 제대로 해내고 있던 것이다. 이보다 훌륭한 일상 루틴이 있을까?
지겹게 반복되는 하루가, 생각해보니 훌륭한 일상 루틴이었다.
가야 할 곳이 없었다면 나는 엔트로피 법칙을 충실히 따라 그날 하루를 무질서하게 보냈을 것이다. 실제로, 오히려 휴일에 나는 생산성이 더 떨어진다. 늘어진 휴일보다 퇴근 후 여러 글을 써내는 날이 실제로 더 많다. 휴일이나 주말은 시간이 많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상 루틴을 자꾸 만들어 내려하기보단, 있는 일상 루틴을 발견하고 활용하기로 했다.
다음 방법들은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나는 실제로 좀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출근과 퇴근은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출근해선 회사 사람들과 아웅다웅해야 하고, 집에 와선 가족들과 그러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엄밀하게 보면 그 둘 다 사회생활이다.
이것을 깨달은 후, 나는 출근길을 귀찮아하지 않고 퇴근길 걸음은 재촉하지 않는다.
잠시 잠깐 주어진 그 시간을 만끽한다. (출근) 통근버스에 올라 몽롱한 정신은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차분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무의식을 살핀다. 여러 영감이 떠오른다. '이 버스가 정해진 진로를 벗어나면 어떨까?'란 생각이 문득 든 적이 있다. '바다로 간 통근 버스' 소설집이 나온 배경이다. 또는 회사에 가서 할 일을 미리 머리로 그려보거나, 개인 브랜딩 콘텐츠들을 떠올린다. 유연한 생각들이 마구 피어오른다.
퇴근 시간은 즐거운 글쓰기 시간이다.
바로, '브레인 라이팅'의 순간. 나는 휴대폰에 메모해뒀던 글감 하나를 골라 머리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제목은 어떻게 지을까? 장르는 무엇으로 정할까, 에세이? 자기 계발? 도입부는 어떻게 시작할까? 본문은 어떻게 나눌까? 소제목은? 예시나 비유는 무엇으로 할까? 등등. '브레인 라이팅'을 하고 나면 어느새 글의 형태가 갖추어져 있다. 글을 쓰자고 책상 앞에 앉아서부터 끙끙대던 예전보단 확실히 써내는 글의 속도가 빨라졌다. 내용은 더 풍부해지고 말이다.
출근과 퇴근은 직장인의 거부할 수 없는 일상 루틴이다.
이 좋은 일상 루틴을 놔두고, 다른 걸 만들려고 했다니. 다른 일상 루틴을 만들어 지켜낼 자신 없는 나에겐 출근과 퇴근이 더없이 좋은 루틴인 것이다. 있는 것을 활용하여 더 큰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헬스장에 기부한 금액으로 치자면 나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니, 살아오면서 헬스장에 등록하고 3분의 1 이상을 간 적이 없었다. 언제나 마음만 앞서 있었고, 운동하는 시간보다 운동하러 가는 여정(헬스장까지 가는 것, 옷 갈아입는 것 등)을 더 힘들어했다. 막상 운동하게 되면 열심히 하고, 또 개운함을 느꼈지만 언제나 그 '의지'는 그 여정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다 나의 운동 목적을 떠올렸다.
건강과 체력 그리고 체중조절을 위함이다. 그렇다면 굳이 근력을 단련하거나 과도한 운동은 필요 없단 결론을 내렸다. 걷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걸으며 사색도 되고, 글감도 떠오르니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었다.
재능 공유 플랫폼인 탈잉에서 VOD강의를 찍자고 했을 때, 나는 10kg을 감량하기로 결심했다.
영상은 언제까지고 남으니까 말이다. 주어진 기간은 3개월.
일하고, 글 쓰고, 독서하고, 탈잉 콘텐츠 준비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MBA 공부도 해야 하고... 또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나에게 운동할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운동이라는 루틴을 새로이 더하기보단, 다시 한번 더 활용할 수 있는 일상 루틴을 발견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아래와 같이 걷기 운동을 실천했다.
회사 점심시간에 여의도 공원 한 바퀴 걷기 (3.5km)
퇴근길 전철 네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기 (4.5km)
주말 저녁엔 가족들과 불광천 걷기 (4.5km)
이 외에도 속이 더부룩하면 사무실이나 전철역에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덕분에, 바쁘고 시간이 없던 상황에서도 탈잉 강의는 10kg을 감량하고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걷기를 하며 얻은 글쓰기 영감이 수두룩하다.
어쩌면 체중감량보다 더 많은 걸 얻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해야 하는 일이 많으니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는 게 분명 필요하긴 하다.
문제는 '의지'다. 의지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가 시간 활용의 핵심이다. 아무리 시간이 확보되었더라도 실천이 뒤따라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해서 나는 '자발적 주 6일 근무'를 한다.
평일 주 5일은 회사 일에 몰두하고, 토요일은 나의 회사를 운영하며 내 일을 한다 생각한다. 기고 글을 쓰거나 강의를 진행하고,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소설과 같은 써보지 않은 장르의 글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중요한 건 이 모두를 '취미'가 아니라 '업'으로 받아들이며 실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발적 6일 근무'란 발상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일요일 하루는 쉬어야 한다. 그래야 더 생산적이 된다.
평일에 업무 모드를 유지하는 방법도 있다.
퇴근하여 옷 갈아 입고 씻는 과정에서 '의지'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일부러 옷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책상에 않는다. (손은 깨끗이 씻고...) 세상에 가장 독한 사람이 여행 다녀와서 캐리어 열고 바로 짐 정리하는 사람, 밥 먹고 바로 설거지하는 사람이라는데 이런 과정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괜히 씻고 옷 갈아입고 하면 의지가 사라질 수 있으니 바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하던 업무 모드를 (내 일을 위해) 이어간다고 생각하면 좋다. 확실히 의지가 덜 사라진다. 집에 오자마자 몇 가지 일을 바로 해내면 마음이 개운하고 성과물도 더 많이 나온다.
이밖에도 나는 휴일 아침 일어나 가능한 바로 샤워를 하려 노력한다.
샤워를 하는 그 순간이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물쭈물 씻지도 않고 빈둥대다 하루를 허무하게 보낸 날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 자신을 너무 잘 아는 나의 꼼수다.
나는 끈기가 없고 바지런하지 못하다.
그나마 글쓰기를 통해 일상을 달리 보는 통찰의 선물을 받으니, 일상 루틴을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 이 방법 또한 완벽하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확실히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있고, 해내고 있다.
뭔가를 생산해낸다는 건, 나의 어느 일부분이 소비되거나 소모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있는 일상 루틴을 잘 발견해서 활용한다면 나는 생산활동이 또 다른 생산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좋아하는 일을 신명 나게 하면, 지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매일이 그렇게 지치지 않고 신명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이미 있는 일상 루틴을 새롭게 바라보고 더 많은 기회들을 발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