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리와 함께 해야 할 만족 관리
삶에 있어 가장 모호한 단어, '만족'
苦莫吉於多願 (고막길어다원)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괴로운 것은 없다.
知止所以不殆 (지지소이불태) 위험을 피하려면 멈추는 것을 알아야 한다.
禍莫大於不知足 (화막대어부지족) 만족을 할 줄 알라. 만족을 모르는 것이 모든 화의 근원이 된다.
事能知足必常安 (사능지족필상안) 자기가 한 일에 만족함을 알면 항상 편하다.
吉莫吉於知足 (길막길어지족) 가장 바람직한 일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만족'이란 만큼 어렵고 모호한 단어가 없다.
단어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우리의 마음이 어렵고 모호하다. 만족하면 왠지 불안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괴롭다. 또한 만족하면 뭔가 안일하고 발전이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일부러 만족하지 않을 수도 없는 삶.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정말 하루하루 매 순간이 헷갈림 그 자체다.
그런데, 항상 삶의 진실은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있다.
현자(賢者)들은 이 어려움에 대한 답을 찾았거나 나름대로 해석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아직 현자가 아니라 그저 휘둘리고 있음을 반성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걸 인정하고, 좀 더 나에게 만족하고자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이 '만족'을 자유자재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삶을 잘 살아낼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마주한 오랜 한자 명언에서도 이와 같은 뜻을 찾을 수 있었다.
'만족을 모르면 괴롭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만족'과 '시간'의 상관관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건 사람들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이다. 머리로만 알고 실천하지 않는다. 만족은 지식이 아닌 '지혜'가 되어야 한다. 지혜가 될 때 실천이 따른다. 그리고 지혜는 깨달음이 동반될 때 얻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단순히 외우는 게 아니라, 머리로 받아들이고 속으로 해석하여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 그 과정을 거쳐야 실천할 수 있는 진정한 지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만족'이 삶의 모든 순간과 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시간'과는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족 여부에 따라 우리는 시간을 지배할 수도, 시간에 지배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을 돌아보건대, 나는 대개 시간에 지배를 당해왔다. 그 이야기는 곧 만족하지 못했단 뜻이다.
깨달음은 그것으로부터였다.
시간 관리가 아니라 나는 만족 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시간 관리와 함께 해야 할 만족 관리
퇴근 한 어느 날.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이것을 다하지 못한다면 나는 불만족에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해야 하는 일을 쭉 적었다. 열 개가 넘는 리스트가 적혔다. 숨이 막혔다. 그중 나는 2~3개 일을 꾸역꾸역 해내고 불만족스럽고 불편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물론, 잠자리가 편할리 없었다. 자면서까지 스스로를 자책하는 스스로를 또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나 자신을 돌아봤다.
불만족에 허덕이는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고, 괴롭힘을 당하는 나에겐 더 큰 불만족이 남을 뿐이었다.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유가 뭘까.
역시, 옛 현자의 말에 힌트가 있었다.
苦莫吉於多願 (고막길어다원)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괴로운 것은 없다.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가장 문제는 완벽하지 못한 존재가 완벽을 꿈꾸는 데 있다. 자기를 괴롭히는 가장 빠르고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어차피 완벽하지 못할 거면서 불필요한 것에 목숨 거는 일이 허다하다.
知止所以不殆 (지지소이불태) 위험을 피하려면 멈추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퇴근하고 열몇 개의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가? 하루 종일 직장에서 고생한 내가, 계속해서 나를 닦달하는 모양새다. 애초에 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고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누구한테 배운 걸까? 멈춰야 할 선을 알아야 하고, 내 그릇에 맞는 정도의 일을 해야 한다.
禍莫大於不知足 (화막대어부지족) 만족을 할 줄 알라. 만족을 모르는 것이 모든 화의 근원이 된다.
그러하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든 병이 난다.
병은 나에게 가장 큰 화다. 마음의 병이 더 무서운 법이다. 한 편이 되어 이 험한 세상과 싸워 나가야 할 내가 나를 닦달하면 병이 나지 않을 수 없다.
事能知足必常安 (사능지족필상안) 자기가 한 일에 만족함을 알면 항상 편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퇴근 후 해야 하는 일 딱 세 가지만 하고 자자고 스스로와 협의했다.
첫째, 글쓰기. ('시간' 관련 글 하나)
둘째, 운동. (집 앞 내천 한 바퀴 돌고 오기)
셋째, 재테크 공부. (재테크 책 두 챕터 읽기)
내가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 일의 극히 일부도 안 되는 것들이다.
맘 같아선 글 서너 개와 전력 달리기 그리고 재테크 강의는 물론 그 외 콘텐츠 만들기와 같이 밀려 있는 일을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 앉히고 이 세 가지만이라도 하면 마음 편히 자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그 세 가지 일을 마무리했을 때, 난 이전과 다른 마음의 편안함을 느꼈다.
吉莫吉於知足 (길막길어지족) 가장 바람직한 일은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
결국, 만족할 줄 아는 게 바람직하다는 걸 깨달아 알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지식'이었던 이 문구가, '지혜'가 된 순간이다. 시간에 지배 당하지 않았다는 그 느낌은 느껴보지 못한 희열이기도 했다.
언제나 내 인생을 어렵게 하고, 삶을 짓누른 건 다름 아닌 내 '욕심'이었다.
욕심은 만족할 줄 모르게 만드는 주범이다. 물론, 만족하지 못해 결핍의 에너지로 성장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는 불만족은 결핍이 아니란 걸 잘 알 것이다. 나를 나무라고, 나를 다치게 하는 불만족은 결핍과는 결이 다르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 '욕심'이 사라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욕심도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만족하는 순간을 늘리자는 것이다. 그 순간을 늘리려면 욕심과 탐욕의 순간을 잘 헤아려야지 싶다. 그러면 '만족 관리'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앞서 퇴근 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예에서, 나는 만족하지 못할 때 시간에 지배를 당했다.
마음은 불편했고, 잠자리는 불편했다. 다음 날 피곤하게 눈을 뜨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일정의 일을 완수한 뒤 만족하기로 결심하자 나는 시간을 지배했다.
그 세 가지 일을 한 나를 칭찬했고, 사실 그 외에 몇 가지 적어 놓지 않았던 일을 더 해냈기 때문이다.
삶은 이처럼 '만족' 여부에 따라 이리저리 그 질이 갈린다.
'시간 관리'가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만족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려 한다.
또 하나.
나는 '지식'을 추구하는지, '지혜'를 좇고 있는지도 함께 돌아보려 한다.
좀 더 만족하는 삶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