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함, 디테일, 자신감
전력을 다하여 자신에게 충실하고 올바른 길로 나가라.
참으로 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 아우렐리우스 -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면 잘할까를 고민하면 할수록, 관리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란 생각이 더 짙어진다.
'나'를 관리하지 않으면 '시간 관리'는 말 그대로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시간'을 위한 것이 된다. 촘촘하고 로지컬하게 세워진 시간 계획은 보기에 참 좋다. 다이어리에 빽빽하게 또박또박 적힌,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는 무언가 잘 쌓아 놓은 탑 같다. 그 탑을 바라보면 왠지 벌써 뭔가를 이룬 것 같다.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이미 공든 탑처럼 느껴진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시간을 쪼개 촘촘한 계획을 세우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니, 나가서 달리지 않아도 살이 벌써 빠진 것 같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를 건너뛰고 시간을 어찌하려던 수작의 말로는 언제나 그랬듯 처참하다. 자신을 탓하고, 또 탓한다. 어느 날 한 번 정도는 계획대로 실천했다고 의기양양하다가 바로 다음날 무너지기를 반복하며 살아온 날이 내 삶에 한가득이다.
그러한 내게, 시간을 초월하여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은 적잖은 열등감을 안겨다 준다.
과연 그들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아마도 그들은 시간 관리가 아니라 자기 관리를 잘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렇다.
결국은 해내는 사람들의 비밀
나는 여기서 부의 추월차선을 탄 백만장자나, 역사 속에서 성공을 이룬 위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위를 돌아보면, 무언가를 진득이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나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뉴스나 역사에서 본 사람들보다, 그들에게서 나는 더 큰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비결이 뭘까,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봤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덩치 큰 친구와 그에 반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작은 친구가 싸움을 했다. 당연히 덩치 큰 친구가 우세했고, 덩치가 작은 친구는 연신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그 덩치 작은 친구는 다시 일어나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때리기만 하던 덩치 큰 친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선생님께서 등장하여 그 싸움은 무마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난처해하던 덩치 큰 친구의 얼굴과 집요함으로 가득했던 덩치 작은 친구의 눈빛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회사에도 집요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낸다. 그러나 집요하다고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어내는 건 아니다. 이게 참 흥미로운 일인데, 집요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악의적으로 집요한 사람과 선의적으로 집요한 사람이다. 전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 물에 익사하는 사람도 있고, 그 불에 데어 크게 다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반면, 후자는 집요함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을 닦달하여 무언가를 이루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움직임으로써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낸다. 때론 선의적으로 집요한 사람도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이 악의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아닌지를 잘 안다.
나는 그래서 가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진척이 더딜 때 내가 아는 가장 집요한 사람을 떠올리며,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한다.
그러면, 흥미롭게도 많은 일들을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를 수도 없이 다짐하면서.
나는 디테일에 약하다.
내 가장 큰 열등감은 디테일에 강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테일하지 못한 게 얼마나 비효율적이냐면, 무언가를 디테일하게 챙기지 않으면 언제나 그 결과는 '처음부터 다시'로 귀결되고 만다.
어렸을 때 난 어질러진 방을 아주 빠르게 치우는 능력이 있었다.
그 방법은 대충 보이지 않는 곳에 널려진 물건을 쑤셔 넣는 것이었다. 당장 보기에는 깨끗해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뭐 하나라도 꺼내려면 더 크고 빠르게 어질러지는 현상을 마주했다.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대충이라는 해충은 박멸하고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란 말에 빗대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란 말도 있다.
'신'과 '악마'의 자리에 무엇을 가져다 놓아도, 결국 '디테일'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이 된다.
나는 그 자리에 '신'과 '악마'가 아닌, '나'를 가져다 놓고 싶다.
또는 '시간 관리'를 가져다 놔도 좋겠다. '시간 관리'는 결국 '나'가 하는 것이므로 어찌 되었건 디테일은 나를 위해서도 시간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나는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요즘은 좀 더 디테일하려 노력한다. 천성이 디테일하지 못하다면, 그와 반대되는 속도감 있는 의사결정과 업무 처리의 장점은 살리되 한 번 볼 거 두 번 보고, 두 번 볼 거 세 번 보면서 디테일을 연습하자고 마음먹는 것이다.
난 도대체 그 사람들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말하는 걸 보면, 정말 안될 것 같은데 기어이 해내고 만다. 약 오르는 건, 별로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면 그 사람이 들인 시간과 정성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일 수 있고, 내가 모르는 그 어떤 비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신감을 조건부로 발휘한다.
될 것 같은 일을 할 땐 의기양양해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기소침해진다. 엄격히 말해서 이건 자신감이 아니다. 자신감은 '상대 값'이 아니라 '절댓값'이다. 자신감은 말 그대로 나를 믿는다는 말인데,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면 그 순간 그 단어의 의미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자신감을 발휘하려 노력한다.
안될 것 같아 불안해하기보다는, '안 되면 말고'라는 주문을 외우곤 한다. 그러면 자신감을 가지는데 좀 더 용이하다.
자신감이 꽉 들어찬 그 사람들의 뒤엔 뭐가 있을까?
그 자신감의 근원이 건물 일지, 돈일지, 그 어떤 명성 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백그라운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감은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작품이란 걸 나는 잘 안다. 돈 많고 떵떵거리며 산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며, 오히려 다른 쾌락이나 소비적인 무언가에 홀딱 빠져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나는 끈기가 없고, 꾸준하지 못하다.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니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물론, 나는 예전보다 같은 시간을 다르게 활용할 줄 알게 되었고,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이유를 돌아보니 '시간 관리'도 중요하지만 '자신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인 듯하다.
'나'가 먼저 관리되어야, 시간도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글쓰기 초반에 '목표 없는 글쓰기'로 시작을 했다.
하루에 글 하나는 써야 한다거나 일 년 안에 책 한 권은 내자는 높은 목표를 정해놓고 넘어지기보단, 몇 날을 건너뛰어 띄엄띄엄이라도 글을 써 나가자고 나와 타협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꾸준한 내 글쓰기의 가장 큰 성공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시간 관리', '목표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는 건, 나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주자는 마음에서였다. 다그치는 순간 그 어떤 시간 관리는 세워질 수 없고, 그 어떤 목표도 실천되지 않는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으면 한다.
분명, 내 주위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내 과거도 한 번 돌아보자.
나도 분명 무언가를 기어이 이루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 '나'를 곧게 세워보자.
전력을 다하여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법.
참으로 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비결.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비밀은 다름 아닌 '나'에게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