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수보다 내 글 수를 더 내세우는 이유
글쓰기란 건 참으로 묘하다.
마음이 힘들어 글쓰기를 시작하는데, 글쓰기를 시작하면 또 마음이 힘들다. 글쓰기로 힘든 마음은 또 결국 글쓰기로 치유하거나 보상을 받게 되는데, 이 선순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악순환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과정은 끝내 삶에 도움이 되니, 글쓰기는 참으로 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건대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마음은 바로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 때다.
사람이란 간사한 게 글쓰기의 처음은 '나'만 보는 글로 시작하지만, 어느샌가 누가 내 글을 읽어 줬으면 좋겠고 그것이 가치가 되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 바람을 안고 글을 쓰면 글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자기 검열관을 통과하기도 힘든데, 타인이라는 검열관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표현하거나, 평범한 걸 평범하게 보지 않는 능력이 필요한 때다. 실제로, 글을 쓰면서 이러한 부분은 어느 정도 발전이 된다.
기어이 글쓰기를 하다 넘어지는 때는, 바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써서 무엇하냐는 회의감이 들 때다.
조회수가 안 나오거나, 구독자수가 늘지 않으면 쉽게 드는 생각. 그러나 글쓰기를 하다 보면 맞이하게 되는 가장 큰 크기의 함정. 글쓰기를 해본 사람 치고 이 함정에 걸려들지 않은 사람은 정녕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함정에서 벗어나 다시금 앞으로 걸아가는 꿋꿋함.
그러니까 알아주지 않아도 쓰는 글엔 힘이 있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알아주지 않아도 쓴다는 행위는 기어이 내 목소리를 내겠다는 발악이다. 조회수와 구독자수에 연연하지 않고 내 마음과 생각을 끄집어내겠다는 실천이다. 그 꿋꿋함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어느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는 기회가 생긴다. 그럼에도 나는 또한 그 한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글을 쓰지 않는다. 그저 내 목소리를 낼 뿐이다.
트렌드에 맞추거나, 키워드에 맞춘 글을 쓰기보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 일종의 '내공'이 생긴다. 남들이 이리 보면 어쩌지,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란 걱정이 없는 글은 부족할 수 있으나 분명 힘이 있다. 알아주지 않아도 쓰고 또 쓰는 과정은 마치 철이 불과 물을 오가며 강해지는 그것과 같다.
구독자수보다 내 글 수를 더 내세우는 이유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읽혔는지보다, 얼마나 많은 글을 생산했는가. '가치'와 '질'은 '양'의 글쓰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까지 써온 글 중, 버릴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버려야 할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며 쓴 글일 것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나아가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다.
역주행을 한 스타들 또한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걸어온 무명의 순간이 있기에 더 빛을 발한다.
나의 첫 독자는 '나'다.
내가 나라는 작가를 알아주고, 나라는 작가가 쓴 글을 알아준다면 글쓰기는 이어질 수 있다.
그 이어지는 글에, 오히려 더 큰 힘과 내공이 있다는 건 모두가 직접 경험해봐야 할 글쓰기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