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생각'은 끊이지 않는다.
글을 머리로 쓴다고 착각할 때가 있었다.
서론-본론-결론을 잘 구성하여 논리적으로 써내려 가는 글. 그것은 마치, 수트핏이 꼭 맞게 어울리는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느낌이다. 화려하고 수려하게, 그것도 어느 한 자리에 앉아 한 번에 써 내려가는 그러한 글쓰기를 나는 바라 왔고, 그것은 영민한 두뇌에서 나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군살 한 점 없는 몸은 여기가 아닌 저기에 있다.
현실보다는 미디어에 있고, 미디어보다는 우리네 인식 속에 있다. 만질 수도 없고 이뤄낼 수 없는 그것들을 좇다 보면 여지없이 우리는 넘어지고 만다. 무언가 머리로 완벽하게 짜내어 써 내려가는 글을 바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재밌는 건, 넘어진 그때 피어오르는 감정이 결국 글을 쓰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날을 돌아보아 글쓰기를 시작한 순간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글을 쓰게 만든 건 우리네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이어리나 결심 노트에 적힌 건 '이성'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생각'이다. '글을 써야지...'란 생각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 있다면 진심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글쓰기를 하면 좋겠다란 생각만 하지 실제로 글쓰기를 바로 시작하진 않는다.
글을 쓰는 시점은, 내가 정말 벅차게 기쁜 감동을 받거나 아니면 반대로 슬픔을 느꼈을 때다.
또는 글쓰기를 생각만 하다 지지부진하게 차일피일 미루는 자신이 미워 펜을 들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의 가이드를 따라 이루어진다.
사람은 숨을 쉬는 유기체다.
'이성'과 '감정'은 하나인 듯 아닌 듯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숨을 쉬니 생각을 하고, 숨을 쉬니 감정을 느낀다. 반대로 생각하니 숨을 쉬고, 감정을 느끼니 숨을 쉬고 있기도 하다. '생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뇌에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붙어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성'과 '감정'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는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앞에 맹수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다. 여기엔 '생각'이란 게 개입할 겨를이 없다. 오른쪽으로 도망가야 더 효율적인지, 왼쪽으로 달려야 좀 더 나은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뛰고 보는 것이다. 즉, '감정'엔 '의사결정' 능력과 '실천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쉬지 않고 감정을 만들어낸다.
누군가와 갈등을 겪거나, 심지어는 혼자 있을 때에도 오만가지 감정이 생성된다. 결국, 그것들이 글이 된다.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이러한 감정을 글로 표현하려 안간힘을 쓴다. 물론,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생각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 느낌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할 수 있다. 나만 보는 글이라면 감정의 서사에 따라 앞뒤 안재고 써도 되지만, 누군가에게 읽힐 글이라면 생각으로 그것을 추슬러야 한다.
'감정'으로 쓰고 '이성'으로 퇴고해야 하는 것이다.
'감정'과 '생각'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숨을 쉬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글의 소재가 끊일 일이 없다. 다만, '생각'이나 '지식'으로만 글을 쓰려할 때는 시작하기도 힘들고 꾸준히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내 '감정'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게 좋다. 그러하면 손가락 끝이 조금은 더 간질간질할 것이고 기어이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더불어,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 경우의 수를 헤아릴 수 없으므로 무궁무진한 글로 태어나게 된다.
지금 당장 내 '숨'에 집중해보면 좋겠다.
그 '숨'엔 내 '감정'과 '생각' 그리고 '내 살아온 날들'이 응축하여 녹아들어 가 있다.
숨을 쉬는 한,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자 글의 소재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