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초라해 보이는 나란 존재는 78억 개의 먼지 중 하나가 아닐까. 대자연이 주는 압도감이나, 외계 행성의 충돌과 함께 없어져 버릴 지구를 생각하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익명과 무명이라는 사회적 가면 뒤에 숨으면 더 그렇다. 나 하나 없다고 세상이 굴러가는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존재가 먼지와 같다고 느껴도 그리 이상하지가 않다.
그러나 손톱 밑에 아주 작은 가시 하나는 나를 우주로 만든다.
그 가시가 주는 고통은 영혼을 잠식한다.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기아로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당장 가시를 빼어야겠다는 조급함과, 조급할수록 조여 오는 그 고통이 나를 우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유일무이한 우주.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 조차도 이 고통에 개입할 수 없다. 가시가 빠지기 전까지 나는 온 세상 고통을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를 뺀 우주와 나의 무게, 과연 어떤 게 더 무거울까?
나를 먼지로 생각하면 전자의 무게가, 나를 우주 자체로 본다면 후자의 무게가 더 무거울 것이다.
여전히, 나는 어떤 무게가 더 무거울지가 영 헷갈린다.
글을 쓸 때만큼은, 나는 우주가 된다!
그런데 하나 확실 한 건, 글을 쓸 때 나는 하나의 우주가 된다는 것이다.
내 마음의 깊이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지식의 깊이는 낮아도, 마음의 저 끝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인류 또한 우주의 저 끝을 가보지 못했으니, 가보지 못한 저 끝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을 우주로 퉁쳐도 좋겠단 생각이다. 우주엔 많은 것이 유영한다. 유영하는 것 중 하나를 골라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써내면, 그것은 글이 된다. 써내고 싶은 글이 끝이 없으니, 과연 우주는 드넓다.
끝이 없다는 것과 더불어, 알지 못한다는 것 또한 우주의 묘미다.
나는 내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아니라, 아예 알지 못하겠다. 오히려 안다고 생각하는 그 착각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마저 무참히 깨버린다.
그나마 내가 아는 내 마음의 일부는, 꺼내어 놓은 글이다.
드넓은 우주에 유영하는 수많은 것들을 중 하나를 붙잡아 글로 써내면, 그제야 나는 내 마음의 일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어떤 소재를 골라낼 수 있을지.
눈을 감고 무중력의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들을 따라다니면, 그곳이 곧 우주가 된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
지구 밖 우주와 내 마음이라는 우주.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그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그 심상치 않은 관계 딱 중간엔 바로 내가 있다. 그 둘 사이에 끼인 존재로 남느냐, 중심을 잡고 그 둘의 우주를 오가는 존재로 거듭나느냐는 나에게 달렸다. 어느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맞거나 틀리다는 개념은 아니다. 우리는 먼지이기도 하고, 우주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우주에 다다를 수 있다.
우주선을 가지고 있거나 스페이스 X를 탈 돈이 있다면 지구 밖 우주를 가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글쓰기로 우주에 가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우주 정복을 꿈꾼다.
물론, 글쓰기를 통해서다. 글을 쓰면서 나라는 우주를 정복하고 싶다. 이 나이 먹도록 함께 살아왔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내 마음이라는 우주를 포괄하고 포용하고 싶다. 우주를 포괄하고 포용한다는 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우주를 만들어낸 조물주의 마음이 그와 같을까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나는 먼지일까, 우주일까.
내 글은 먼지가 쓴 글일까, 우주가 쓴 글일까.
먼지와 우주의 무게를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숨을 거두어 먼지가 되기 전에, 꼭 한 번 내 마음의 우주 저 끝을 한 번 가보고 싶을 뿐이다.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어떤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글쓰기를 하다 보면 다 알진 못하더라도, 알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은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