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눈물겹도록 고마운 이유
조급함이 군대처럼 몰려온다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대세(?)다.
좋은 기회를 놓치는 불안함을 뜻하는 말로, 요즘은 주식이나 부동산 그리고 비트코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를 대변한다. 즉, 나만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뒤처짐의 마음이 바로 'FOMO 증후군'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벼락거지'란 말도 생겼다. 자본의 이익 속도가 노동의 이익을 비웃듯 앞서가며 생긴 현상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아무래도 'FOMO 증후군'에 걸린 것 같다.
'벼락거지'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이미 세상은 저만치 앞서가 있는 것이다. 주식의 개별 종목은 지수를 이길 수 없고, 한 개인 개인은 세상의 트렌드를 이길 수 없다.
그럴 때면 조급함이 군대처럼 몰려온다.
지금까지의 삶이 헛된 것 같고 무얼 하고 살았나 자괴감이 든다. 이러한 싸움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나는 1대 다(多)로 세상과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 빼고 모두가 잘 나가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 다른 이들의 삶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예고편과 같고, 내 삶은 지루하고 지루한 장면의 이어 붙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세상의 속도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빨라질 것이다. 향후 20~30년 간 일어날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파급효과는 250년에 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한 시간을 24시간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가 존재한 시간은 단 2분에 불과하다. 2분간 우리가 겪은 역사의 격동을 보면, 우리 앞날의 속도와 변화의 크기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어떻게든 세상이 속도에 맞추거나 그걸 앞서가려 해야 하겠지만, 사람이 무작정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간 오히려 슬럼프나 번아웃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속도는 더 더뎌질 것이다.
세상의 속도를 어찌할 수 없다면 마음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그림자를 앞서 나간 조급한 마음을 잡아 와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 있는 내 마음을 나에게로 회귀시켜야 한다. 중심을 잡는 것이다. 중심을 잡을 수 있다면 나만의 페이스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쩌면 그것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내 무의식은 어서 빨리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한 것이다. 이제와 돌아보니 좀 알겠다. 글쓰기를 해본 적 없는데 어떻게 쓰냐고 반발하던 내 항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선 쓰고 보라는 무의식의 종용은 나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말이다.
세상엔 내 느린 속도를 받아줄 곳이 없다.
뒤처지면 끝이고, 각박한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느린 내 속도를 기다려 주는,
글쓰기라는 위안
그러나 글쓰기는 다르다.
글쓰기는 속도와 무관하다. 속도를 낼 수 없고, 내서도 안된다. 글쓰기는 속도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난다. 나 자신이 글감이자 주제이며, 줄거리이자 서사다. 느려도 좋으니, 스스로를 내어 놓으라며 흰 여백 안에서 나를 기다려 준다.
때론 그래서 글쓰기가 눈물겹도록 고맙다.
세상은 나에게 뒤처지지 말라고,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글쓰기는 온전히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이다. 하나 둘, 수줍고 부족하더라도 내 이야기 하나를 내어 놓으면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된다. 속도에 집착하여 살 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느끼지 못했던 걸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막연하게 생각되던 세상의 속도가 가늠되고 내가 어디쯤 있는지 보이게 된다.
속도는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성을 측정하기 위해선 중심이 잡혀야 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바라보고 중심을 잡으면, 비로소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중엔,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들도 있고 내가 부족해 일어난 일들도 있다. 그것들만이라도 바로 볼 줄 알면, 나는 세상의 적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과 용기가 생기게 된다.
세상의 속도에 지쳐 숨을 돌리고 싶을 때.
나만 빼고 모두들 다 잘 나간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 때.
방향을 무시한 채 오로지 속도에만 집착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그때마다, 나는 글을 쓰려한다.
글쓰기만이 내 느린 속도를 온전히 허락해줄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