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서만큼은, 이기심의 정도를 가늠할 필요가 없다.
이기심에 대한 오해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이기심) 때문이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중 -
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은 우리네 사회에서 금기되다시피 해왔다.
집단주의로 똘똘 뭉쳐 생존해왔던 삶의 방식 탓이다. 튀면 안 되고, 제 목소리 내면 안되고, 모두가 잘 되거나 모두가 망해야 한다는 정서는 사회적 율법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옛말이 그 정서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고 특히나 자본주의가 활성화되면서 '이기심'은 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똑똑한 무엇이 되었다.
이기적이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GDP의 성장세와 이기심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는 분명 비례해 왔을 것이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집단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나라마저도 '이기심'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이 된 지 꽤 오래다.
옛 개념에 갇힌 이들 중 몇몇은 애점 스미스가 말한 '이기심'을 곡해하여 받아들이기도 한다.
오죽하면 '애덤 스미스 문제'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애덤 스미스가 쓴 <도덕 감정론>에서는 집단의 이익에 역행하는 구성원은 억압당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그가 <국부론>에서 말한 '이기심'과는 상충되는 문제로 여겨진 것이다. 즉, 전자에서는 '이기심'을 내세우면 안 된다고 말하고, 후자에서는 '이기심'덕분에 세상이 굴러간다고 말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다음 한 문장이면 쉽게 풀릴 문제다.
어쩌면, 아니 분명.
애덤 스미스는 표현만 달리 했을 뿐, 그 두 책에서 이 한 문장을 표현하려 했던 게 맞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창의적인 것은 가장 이타적이다.
박경리 작가의 이타심은 얼마만큼이었을까?
얼마나 큰 이타심을 가지고 있기에 '토지'라는 대하소설을 지어 사람들의 시대상을 그려내고 위로했을까? 그렇다면 소설가 김훈 선생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실, 나는 그들에게서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을 더 찾아낸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일부를 인용해보면 더 이해가 잘 된다.
우리가 훌륭한 대작을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각 작가의 이타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와 마음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거나 표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러니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이기심) 때문이다.
- 스테르담 -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난 지독 하리만 한 작가의 이기심을 보았다.
주인공이 육식을 거부하는 전체적인 과정이나, 물구나무로 서서 자신을 나무라 하는 장면 등은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오히려 내겐 충격이었다. 그 충격에 동한 사람이 많으니 세계에서 인정하는 권위적인 맨 부커 상을 받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하지 못한 걸,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다른 이들이 받을 충격은 고려하지 않고 기어이 글로 풀어낸 그 마음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모든 작가의 '이기심'은 결국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창의성'이 되었다.
그리고 그 '창의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 그리고 위로를 불러일으켜 끝내는 '이타적'인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기적인 글쓰기의 시작
'이기심'은 나의 사리사욕 채우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기심'은 '나'를 삶의 '중심'에 둔다는 것이다. 그런 '나'를 글로 쓴다면, 아마도 '이기적인 글'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나와 내 글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과정이 창의적이고, 끝내는 이타적일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내 글을 써 내려가는 이기심.
주저하지 말고 표현하고 싶은 걸 꺼내어 놓는 이기심.
내게 맞지 않는 무언가를 채우려 하거나, 책과 같은 당장의 결과물을 내어 놓으라는 것을 무시할 수 있는 이기심.
글쓰기가 쉽지 않은 건 특별한 무언가를 써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고, 글쓰기가 어렵지 않은 건 그저 내 속에 있는 것을 꺼내어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기적이면 내 속의 것을 조금은 더 잘 끄집어낼 수 있다. '나'를 중심에 두면 할 이야기가 더 많아진다. 특별하고 있어 보이는 주제와 소재를 찾으려, '나'를 주변에 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기적이어야 한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기면 산소마스크가 내려온다.
안내 사항에 보면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그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써져 있다. 어른이 먼저 숨을 쉬어야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타적이기 위해선 이기적이어야 한다.
무언가 대단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선사해야겠다는 어설픈 이타심보다는, 지금 내 글을 얼마나 온전하게 나의 이기심으로부터 끄집어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글쓰기에서만큼은, 이기심의 정도를 가늠할 필요가 정녕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