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럼프는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증거

글럼프가 내게 글 하나를 선사해 주었다는 것도 알아채면서.

by 스테르담
글이 안 써진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건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글쓰기가 멈췄다.

둘째, 쓸 주제가 없다.

셋째, 쓸 주제가 있으나 제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우리는 이것을 '글럼프' 또는 '글태기'라고 말한다.

보통 글쓰기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나는 '한 줄이라도 써보세요', '제목이라도 써보세요'라고 조언을 준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글럼프를 만나면 나도 어찌할 재간이 없다.


물론, 글럼프의 종류나 성격이 좀 달라지긴 했다.

예전엔 시작하지 못하는 머뭇거림이었다면, 이젠 위에서 말한 세 번째 의미에 가깝다. 글쓰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루틴을 만들고 제목으로 쌓아 놓은 엄청난 양의 주제가 있으나, 나는 내가 원하는 표현의 수준을 끄집어낼 수 있을지에 의심이 드는 것이다. 완벽할 수 없으면서 완벽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의 질병이 또다시 도지려는 찰나다.


글럼프는 어디서,
왜 오는가?


글럼프는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아주 확실하다. 내 마음에서다. 내 마음의 얕거나 깊은 의식 속에서 글럼프는 고개를 쳐든다. 순순히 글이 써질 줄 알았냐는 비아냥과, 그동안 써온 글은 어느 열정의 불타오름과 함께한 찰나가 아니었는지를 추궁한다.


그렇다면 글럼프는 왜 올까?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 써지는 이유에 대한 오만가지 원인을 찾아 헤매다, 나는 뒤통수를 후려쳐 맞은듯한 깨달음을 얻어 그 확실한 이유를 게워낸다.


글럼프가 온 이유.


나는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글럼프는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증거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이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또 있을까?


글럼프가 오거나, 글태기가 왔을 때 나는 나를 책망했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저 나를 탓하면 되었다. 안 써지는 분노와 울분을 나에게 쏟아내면 되었다. 그러나 남는 건 없었다. 아니, 상처만 남았다. 나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써서 뭐하냐는 자괴감이 심장을 후벼 팠다. 결국, 글쓰기는 오히려 더 긴 시간 동안 멈추게 되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생각을 바꾼 이유. 부정적이고 자책감 가득한 화살을 나에게 쏘는 대신, 저 멀리 어느 곳의 목표를 향해 활시위를 다시 겨누는 것. 스스로를 괴롭히던 나와, 그래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내가 마주 보며 으르렁하는 게 아니라 다른 하나의 공동 목표를 보게 되는 순간. 아웅다웅하던 두 존재가 악수하며, 잠시 조금은 쉬어가도 된다는 덕담을 나누며 이내 화해하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글쓰기는
그만 둘 때도 되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과업이 아니다.

나는 글로 숨을 쉰다. 어느새부턴가 그리 되었다. 힘들면 쓰고, 넘어지면 쓴다. 기뻐도 쓰고, 신나도 쓴다. 글쓰기는 그렇게 일상이 되었고, 삶이 된 것이다.


억지로 해야 할 때, 나를 돌보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나는 괴롭다.

글쓰기가 괴롭다는 건, 글쓰기를 의무 또는 극기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꾸준한 글쓰기란 명분으로 자신을 책망하며 하루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써내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보다 '꾸준함'이 더 중요할까? 적어도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꾸준함'보다 '나'를 더 추구하고 싶다.


글을 쓰는 건 나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다.


그러니까, 글럼프가 왔을 땐 '내가 글을 쓰고 있구나'를 느끼며 잠시 쉬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은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글을 쓰는 모든 '나'에게도 전하는 말이다.


나를 괴롭히는 글쓰기는 그만둘 때도 되었다.

글럼프는 나를 괴롭히러 온 게 아니다. 오히려, 글럼프가 오지 않으면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있는 건지를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도 이렇게, 글럼프가 내게 글 하나를 선사해 주었다는 것도 알아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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