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앞엔 장사가 없다. 부부든 연인이든, 그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얼마나 뜨거웠었는지를 돌아보면 더 그렇다. 그 관계는 용암의 온도를 넘어서는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태가 오는 순간, 그 온도는 무색하게도 낮아진다.
재밌는 건 '권태(倦怠)'의 뜻이다.
'게으를 권'자에 '게으를 태'다. 즉, 서로에게 게을러지는 것이 '권태'의 본질이다. 흥미를 잃어 게을러지는 것인지, 게을러져 흥미를 잃는 것인지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할 의미다.
권태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에든 게을러질 수 있다. 자기 계발이나 운동, 독서 등. 글쓰기도 예외는 아니다. '글럼프'에 이어 '글태기'란 말이 생겨난 이유다.
'게으르다'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말 그대로 게을러 일을 미루거나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 하나. 과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괴적인 게으름 하나. 글쓰기로 인한 권태는 이 둘을 모두 포함한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전자에, 글쓰기를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은 후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즉, 글태기를 겪고 있다면 내 게으름은 둘 중 어떤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과감한 시작이 필요하고, 시작했다면 게으름을 이겨내야 한다. 연인 간에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어렵고도 쉽다. 이미 변한 마음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변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쉽게 풀릴 일이다.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 하면 할수록 부자연스러운 갈등만 생겨날 뿐이다.
권태는 남을 탓하기보단 내 게으름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권태를 느끼려면 뜨거웠던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글태기를 느끼고 있다면 뜨거운 마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라 생각해도 좋다.
나는 '글럼프'나 '글태기'와 같은 신조어가 참 반갑다.
그만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고, 그 이상의 글쓰기를 향한 열망과 노력이 불타오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글럼프'는 글을 쓰고 있다는 증거이고, '글태기'는 좀 더 꾸준히 잘 쓰려는 앞선 마음이다.
부부나 연인 간의 권태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사람은 평생 뜨겁게만 살 순 없다. 세상은 차갑기 때문에, 정신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평생 믿고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좋아질 사람은 이로 인해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서 갈라서서 다른 인연을 찾아야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열정만으로 글쓰기를 이어갈 순 없다. 나와 글쓰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왜 쓰고 있는지, 글쓰기를 통해 얻고 있는 건 무엇인지. 혹시라도 과도한 목표를 세웠거나, 당장 책을 내자는 앞선 욕심에 스스로를 게으르게 만들고 있진 않은지를. 더불어, 써지지 않는 글을 붙들고 있지 말고, 과감하게 주제를 바꾸거나 아예 다른 종류의 글을 써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 보면, 글태기는 오히려 글쓰기의 중단이 아니라 글감을 모으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게 된다. 멈추었을 때, 비로소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한다.
사랑은 감정이다. 그렇다면 열정도 감정이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열정에 너무 사로잡힐 필요 없다. 조금은 온도가 떨어졌어도, 다시 꾸준히 쓰면 된다.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식었을 때, 비로소 취하지 않은 온전한 정신으로 내 마음과 내 일상과 내 현실을 덤덤히 써 내려갈 수 있게 된다.
나는 '글럼프'와 '글태기'를 나 자신에게 적극 장려한다.
앞으로도 그 둘을 자주 만나면 좋겠다.
그 둘과 함께라면, 나는 뜨겁게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고 계속해서 쓰고 있으며 더 잘 쓰려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