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몰려오는 일은 내 페르소나가 만들어낸 일들이니까.
대체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해낼 수 있을까?
간혹, 너무 많은 일이 몰릴 땐 뒤엉켜 있는 서버실 랜선이 생각난다.
얽히고설킨 선들을 보면 숨이 막히는데,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잘 빗겨 넘긴 머릿결처럼 랜선들은 깔끔해진다. 보는 내 마음이 정갈해질 정도다. 그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시간과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뒤엉켰다 정리된 랜선을 떠올리게 한다.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드는 일들엔 자비가 없다. 그야말로 무차별 폭격을 하는 듯하다. 끊이지 않는 회사 업무는 물론, 대학원 공부와 졸업을 위한 논문 준비, 계약된 두 권의 책 초고와 개고 진행, 일주일 뒤로 다가 온 강의, 글 기고 원고 작성, 글쓰기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해야 하는 수강생 관리와 출판 진행 등.
여기에 개인적인 글쓰기와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독서나 운동 등을 해야 하니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하다.
그러나 돌아보니, 나는 이 일들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
시간 배분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
사실, 물리적으론 위에 열거한 것들을 도저히 해낼 수 없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쪼갠 들, 그렇다고 그것들이 분열하여 없던 시간이 더 생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이럴 때일수록 시간을 쪼깨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시간 쪼갤 시간을 아껴서라도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그건 바로, '카테고라이징(분류)'이다.
무작위로 흩어져 있는 것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파악된 특성을 기반으로 분류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그 실마리를 붙들고 찾아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물리적 시간을 초월하여 무언가 하나 둘 이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니, 시간 배분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무엇으로 카테고라이징 할 것인가?
시간 배분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카테고라이징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 단계에서 한 번 더 생각할 것이 있다.
바로, '무엇으로 몰려온 일들을 카테고라이징 할 것인가'다. 아마도 시간에 초점을 둔 사람이라면 '중요성'과 '시급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동시에, '닥친 일'을 하게 되면서 '중요성'과 '시급성'을 기준으로 그려 놓은 매트릭스는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도 많이들 경험했을 것이다.
정말, 이렇게도 분류해보고 저렇게도 나누어 본 결과 나에게 가장 좋은 카테고라이징 기준은 바로 '페르소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몰려오는 일들은 결국, 내가 쓰거나 내게 씌워진 페르소나로부터 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페르소나'의 중요성을 알고, 또 '페르소나'를 '글쓰기'나 '개인 브랜딩' 뿐만 아니라 '시간 관리'에도 적용시키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바로, '나'가 중심이 되는 것들이기에 그렇다. 글쓰기의 주체는 나다. 개인 브랜딩은 나를 위한 마케팅이다. 더불어, 시간 관리 또한 당연히 어느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다.
이 이상 더 중요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
페르소나를 위한 시간 관리법
해야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놓은 리스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순서를 바꿔야 한다. 나의 '페르소나'를 먼저 나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 페르소나는 아래와 같다.
더불어, 그 옆에는 그 페르소나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적어 놓는다.
직장인 (평일 08:00 ~ 18:00)
작가 (평일 18:00 ~ 24:00/ 주말 20:00 ~ 24:00)
MBA 학생 (금요일 18:00 ~ 토요일 15:00)
강연가 (Occational)
아빠/ 남편 (평일 퇴근 후, 주말 전일)
물론, 페르소나와 시간을 이렇게 나눈다고 해서 칼로 두부 자르듯 할 순 없다.
페르소나와 시간은 중첩성과 동시성을 띄기 때문이다. 하나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열거하고 그것을 쫓아가느라 헐떡이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명확히 하여 주도적으로 일을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1차적으로 내 페르소나와 가용한 시간이 설정되었다면 다음은 일을 페르소나로 분류하는 것이다.
직장인: 중요 보고서 작성, 담당 국가 마케팅 비용 정산,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등
작가: 브런치 글쓰기, 초고 원고 작성 및 개고, 글 기고 원고 작성, 글로 모인 사이 기획/진행 및 홍보
MBA 학생: 이번 주 내용 복습 및 다음 주 학습내용 예습 및 과제, 졸업 논문 작성
강연가: 탈잉 강의, 새로운 강의안 준비 (스크립트 및 PPT 작성)
아빠/ 남편: 와이프와 맛집 데이트, 아이들과 나들이 및 운동 등
이 두 과정을 Mix 하면 전체적인 매트릭스가 완성된다.
이 매트릭스를 살펴보면, 어느 시간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고 또 그 역할에 몰입할 수 있다. 내가 어떤 페르소나를 쓰고 있는지와 그에 대한 일이 서로 연관을 짓지 않으면 일의 효율은 떨어지고 시간 관리 또한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로 페르소나와 그에 맞는 일과 시간을 잘 접목하면 몰입할 수 있고, 몰입은 시간을 배로 불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페르소나를 활용한 시간관리의 시작은 바로 '나'로부터다.
내가 어떤 페르소나를 쓰고 있는지, 그 페르소나의 역할과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더불어, 그 페르소나를 써야 하는 시간은 언제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페르소나는 내가 쓰고 싶다고 쓰는 것이 아니다.
평일 직장인의 페르소나가 야밤이나 주말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분명 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페르소나를 갑자기 쓰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고, 세상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 페르소나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그에 맞는 일을 카테고라이징 하여 관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 일에 파묻혀 허우적 대느냐, 일을 파악하여 주도하느냐의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차피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모든 페르소나를 흠 없이 소화해낼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럼에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집념은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분명한 건, 이전보단 지금 더 많은 것들을 나는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끈기가 없어 고민하고, 치밀하지 못해 엉성한 성과를 내던 내가 완벽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내 페르소나를 우선적으로 살펴본 결과다.
랜선 전문가가 랜선 정리를 하는 데에는 짧게는 이틀에서 일주일까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 사이에 모든 서버는 셧다운 된다. 이는 회사 입장에선 큰 손실일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꼭 한 번은 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잠시 멈춰, 복잡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시간 관리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내 페르소나도 하나하나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때론, 멈춰야 다시 나아갈 수 있다. 그 멈춤은 손실이 아니라, 더 큰 이익과 효용으로 돌아온다.
앞으로도 나는, 몰려오는 일에 맞서 시간을 쪼개기보단 내 역할을 되돌아보아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어가고자 한다.
어차피, 몰려오는 일은 내 페르소나가 만들어낸 일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