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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7. 2021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라는 오만

나는 나에게 집중하고, 나답게 살아야지...!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 송곳 2부 3화 중 -


직장생활을 한 지 겨우 몇 년이 지났을 때다.

노트북에 고정되었던 시선을 떼고,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내 주위엔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이라는 미래의 '나'들이 한가득이었다.


3년 후의 나.

10년 후의 나. 20년 후의 나. 정해진 일과 정해진 길. 나는 그들과 달리 살아야겠다고 눈을 질끈 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눈을 질끈 감은 그때의 나를 뒤로하고, 역시나 정해진 길을 꾸역꾸역 걷고 있었다.

잠시라도 그 정해진 길을 벗어난다면, 조금이라도 삐걱 거린다면 내 미래는 암담할 것이란 두려움에서였다. 정해진 길을 벗어날 자신과 용기는 없으면서, 그 길로 꾸역꾸역 가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자아는 분열하고 '나'라는 색채는 옅어만 갔다.


그렇다면,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선배와 상사의 모습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해야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것들이 한없다. 그러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것이 내가 다짐했던 것들에 대한 결과의 실마리다. '저렇게 해야지'란 건 손에 꼽을 만큼 해냈고,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란 건 무수히도 많이 해내고 있다.


왜일까.

나는 안 그럴 거라는 장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던 오만. 결국, 나 또한 내가 바라보던 선상에 서서는 달라진 풍경에 지난날의 내가 다짐했던 그 모든 걸 잊은 것이다.


이것을 나는 거스를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몰랐던 풍경을 맞이 하는 순간, 그 풍경은 소스라치게도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이 된다. 그 현실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현실을 살고 있는 나에게 현실을 일깨우는 현실의 경종이 된다. 현실은 참으로 무섭다. 현실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은, 삶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다. 삶의 무게를 깨닫는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닫는다.


다 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 혼자만 뭔가 특별하다는 착각은 나를 더 옥죄는 어긋난 신념이다.

나는 저들과 달라야 한다는 오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마치 틀린 것 하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마치 화장실 안 가도 되는 사람인 것 마냥, 나는 마치 재채기 따윈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그 착각 말이다.


다 똑같이 살아간다.

다 그렇게 살아간다. 다만,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지라도 그곳에서 느끼는 생각과 통찰이 다르면 된다.


누군가 올라간 산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오르는 그 길에서 본 민들레와 들이마신 상쾌한 공기. 드디어 올라선 정상에서의 충만함.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경험하고 이루어낸 것들이다.


그러나, 모습은 똑같을지언정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직접 경험했을 때는 세상이 달리 보인다.

내가 바라보던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의 페르소나도 모두 똑같아 보였지만 막상 내가 그것을 뒤집어쓰고 나면 감회와 짊어진 짐의 무게 남다른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남들과 똑같이 사는 모습에 절망하거나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라는 오만한 생각보다는, '나는 나에게 집중하고, 나답게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게 맞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처질 때.

특출 난 것 없이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간다고 힘이 빠질 때.


나는 나로 살고 있는지를 반드시 챙겨보기로 한다.

이것이 나의 덧없는 오만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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