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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24. 2021

영양제 한 통을 다 먹은 날

시답잖은 생각이나, 그래도 꽤 영양가 있는 생각이 아닐까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늘어간다.

차곡차곡 쌓이는 그것엔 예외가 없다. 쌓고 싶지 않아도 쌓이고, 거스르고 싶어도 거스를 수가 없다.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느는 건 영양제의 양이다.

그것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영양제 없는 삶은 영 매가리가 없다. 어느새 나는, 우리는 영양제의 도사가 되었다. 몸에 어떤 증상이 나타나거나, 신체 어느 일부의 능력이 좀 떨어진다 싶으면 온갖 알파벳을 읊어가며 그 효능을 떠올린다. 증상에 따라 (자신에게) 척척 처방을 내리는 그 모습이 영 애닯다.


혹자는 영양제를 보며 '플라시보 효과'를 떠올린다.

나도 그렇다. 때론, 물과 함께 삼킨 영양제가 내 몸의 일부 어느 것을 다시 살려 주길 바란다. 아무 느낌이 없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가루가 견고하게 응축하여 만들어진 딱딱한 알약 하나가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니, 그저 그 작은 한 알이 대견하기만 하다.


나는 꾸준하지 못한 성격이라, 부끄럽지만 영양제 한 통을 뜯어 끝까지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 많은 영양제는 어디로 갔을까. 몸이 아니라,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영양제를 나는 애도한다.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지나 사람의 몸에 들어가 활력소가 되겠다는 풍운의 꿈을 접고 쓰레기통으로 사라졌을 테니까.


그런데, 마침내 오늘 아침.

나는 영양제 한 통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알을 물과 함께 몸속으로 보냈다. 순간, 영양제의 효능보다 영양제가 나에게 '너는 꾸준하구나'라고 말해준 듯하여 위로를 받았다. 아, 영양제의 또 다른 효과나 성분일까. 이것으로부터도 꾸준하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나는 참으로 꾸준하지 못했구나를 생각하며 헛 웃었다.


그렇게 내가 그래도 꾸준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존재가 하나 더 늘어 기분이 좋긴 하다.

게으르고 진득하지 못해도 월급을 계속 받고 있는 걸 보면 나는 꾸준하고, 그래도 마음의 것들을 내놓아 글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꾸준하고, 이젠 영양제 한 통을 끝까지 비웠으니 나는 꾸준한 면이 분명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다른 영양제 한 통을 새롭게 뜯을 것이다.

아마도 그 마지막 한 알을 다시금 삼킬 때, 나는 표시된 영양 성분 이상의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영양제 한 통을 다 먹은 날.

그 뭐가 특별하다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글로 풀어내는 걸 보니 과연 그 어떤 영양소가 내 몸속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구나란 생각을 해본다.


시답잖은 생각이나, 그래도 꽤 영양가 있는 생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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